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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5일 오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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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페이지 79

    고구려 : 21대 문자명왕, 최대 판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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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는 나운, 명치호왕이라고도 하는데, 전성기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다.
    발음을 조심해야 하는 아버지 ‘조다’가, 징그럽게 오래 산 할아버지보다 일찍 죽는 바람에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옥좌에 앉았다.

    491년 즉위하였는데,
    재위 3년, 세력이 커진 물길에 시달리다 지쳐버린 부여를 완전히 복속시켜 사상 최대의 판도를 이루었다.
    재위 6년,  신라의 우산성을 재공격하여 함락시켰고,
    8년엔 백제인들이 기근으로 투항해 오기도 하였다.
    16년, 말갈과 연합하여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고,
    21년에 백제의 가불·원산 두 성을 함락시켰다. 포로는 1천여 명.
    519년 서거하였다. 재위는 28년.

    선왕과는 대외 여건이 판이한 환경에서 왕 노릇을 해야 했는데,
    서쪽의 북위와는 대체로 친선 외교를 지속하였으나,
    거란의 기병을 이용하여 북위의 변방을 약탈하였다는 기사 등으로 보아 갈등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동북쪽에는 숙신의 뒤를 이은 물길이 세력을 확장하여, 부여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는 등 끊임없이 준동하였으며,
    남쪽에서는 나제 동맹이 단단한 결속을 자랑하며 저항하였다.
    예전의 속국 내지 반 속국 상태의 세력들이 모두 적대적으로 바뀐 환경이었으므로,
    고구려의 막강한 위세는 옛날 이야기이고, 현상유지하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남북으로 끊임없는 도전에 시달리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불교에 의지한 흔적도 보이는데,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시절의 위대한 고구려를 생각하면 조금 아쉬움이 남으나,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인간사의 법칙을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고구려 : 20대 장수왕, 5세기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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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호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 오래 살며  5세기를 지배하였다.

    이 분의 함자는 거련,
    고구려를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업그레이드한 위대한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39세라는 아깝기 짝이 없는 나이에 붕어하자,
    412년 아버지처럼 낭랑 18세에 왕위에 올랐다.

    대국으로 거듭난 고구려는 겉보기에는 화려했으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뜩이나 드센 누대의 귀족 세력들이나 아버지 대에 양산된 공신들은, 대국 형성에 기여한 자신들의
    공로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고,
    복속한 지역의 백성들이나 세력들은 힘에 굴복한 것이었기에, 틈만 보이면 언제든 반란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이 중원의 강자가 된 북위도,
    고구려와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북연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끊임없이 실력을 투사하고 있었으므로,
    이 또한 두통거리였다.
    갓 등극한 홍안의 애송이에게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인 공개토대왕의 카리스마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버지처럼 특출한 재능도 없이, 수두룩한 난제에 둘러싸인 어린 왕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라고는,
    광개토대왕의 적통이라는 것뿐이므로, 일단 광개토왕릉비를 세워 위대한 아버지의 업적을 기렸고,
    사신을 보내고, 받고, 사냥하는 일상적인 왕 노릇만 하며 10여 년을 보내었다.
    그리고 평양으로 천도 하였다.

    평양성으로 천도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다루기 힘든 국내성 귀족들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을 것인데,
    평양이라고 마냥 만만할 리는 없었겠으나,
    기득권들의 본산 국내성 보다는 고분고분했을 것이니,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일거에 해결하여,
    기개를 마음껏 펼치고 싶었을 야심찬 청년왕에게 평양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니들 보기 싫어 옮길란다` 고 할 수는 없으므로 대 내,외적 명분은 방어였을 것이다 .
    역대 중국세력과의 전쟁이 증명하듯이, 가상의 주적 북위와 전쟁을 하기에, 
    국내성은 적과 거리도 가깝고 방어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기후가 춥고 토질이 척박한데다 그나마 농사지을 수 있는 땅도 얼마 안 되었다.
    반면에 평양은 우선 거리가 멀고, 그 사이에 방어에 적합한 지형이 많은 데다,
    옛 중국 군현세력의 본거지답게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였으며 기후와 토질이 농사에 적합하였다.
    나중에는 배후의 신라나 백제가 위협이 되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는 둘 다 식물 상태였으므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평양 천도를 완료했을 때가 재위 16년,
    다른 왕들이라면 슬슬 인생의 마무리를 시작해야하지만 장수왕은 이제 시작이었다.

    재위 24년, 북위가 준동하여 위기에 빠진, 북연의  3대 황제 풍홍이 고구려에 구원 요청을 하였다.
    사실 북연과 고구려의 관계는 좀 모호한데,
    북연은 설립 시 고구려의 분가 개념으로 고구려의 우위를 인정하였고, 
    고구려의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하였으나 황제국이었고,
    반면에 우위에 있는 고구려는 조공국이었다.
    뭔가 이상하지만 이런 식으로 관계가 설정된 이유는,
    북연의 설립 시 풍발이 쿠데타를 일으켜, 
    후연의 황제를 죽이고 양자인 고구려계 모용운을 추대하였는데,
    정치적 입지가 취약했던 모용운은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면서,
    모용씨를 버리고 원래의 고씨로 복성하였다.
    이는 고구려를 종가로 인정하는 갈데 없는 제후의 행위였으나,
    자기 힘으로 정권을 잡은게 아닌 고운이,
    정변 공신인 풍발을 비롯한 북연의 제세력들을 무시하고, 공식적으로 고구려의 제후를 자처하지는
    못한 듯하다.
    반면에 고구려는 고운을 지원하기 위해 황제로 인정한 듯하고.
    종가가 제후가 되는 이상한 관계이긴 했으나,
    그래도 서로 상부상조하며 존중하는 나름 창조적인 관계였는데,
    고운이 암살당하고 풍발이 2대 황제가 되면서 상황이 꼬이게 되었다.
    풍발은 제법 황제 노릇을 잘했고, 고운과는 달리 고구려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제대로 된 황제 대접을 받고자 하였다.
    고구려는 좀 기분은 나빠도 자존심을 세우느라,
    국력을 낭비하고 요동을 불안하게 하기 보다는 기왕의 형식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고.

    그런데 3대 황제, 풍홍이 즉위한 후 상황이 또 한 번 반전 되었다.
    북연은 북위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몰리게 되자. 조공국, 고구려에 구원을 청하였는데,
    제후국으로서 충성을 다해주기를 기대했겠지만, 그건 님 생각이었고,
    고구려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풍홍만 구원하여 탈출시켰다.
    이는 풍홍의 정치적 비중을 생각해서 한 일이지,
    상전의 위기를 나의 위기로 여겨 대리전을 치르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풍홍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
    구원을 받은 풍홍은 위로하는 장수왕을 꾸짖고,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정사를 마음대로 하는 등 개념을 상실한 짓거리를 하여,
    장수왕을 열받게 하였고 결국 천덕꾸러기가 되었는데,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풍홍은 송나라로 망명을 시도하였고,
    이에 인내가 바닥난 장수왕은 풍홍을 두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바보짓을 하다가 명을 단축한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당시 장수왕의 위상은 풍홍 따위가 꾸짖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북위로부터 풍홍을 구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병 인도 요청도 거부하였고,
    풍홍이 송에 망명 요청을 하여,
    송의 사신이 병사와 더불어 도착하였는데도, 인도를 거부하고 풍홍을 죽여 버렸으며,
    그 와중에 고구려 장군이 전사하자 송의 장군을 체포해 버렸다.
    이렇게 중국의 남북조를 모두 무시하였으나 둘 다 감히 항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위는 오히려 혼인 동맹을 요청하였고, 
    송은 체포되어 송환된 장수를 투옥하고 고구려의 눈치를 보았다.
    장수왕의 고구려는 동북아의 조정자 내지는 균형자의 위치였던 셈이다.
    아무튼 이럭저럭 중국의 남,북조, 유연, 그리고 고구려의 4강체제가 완성되어 한숨 돌리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왕이라면 이쯤에서 저승구경을 해도 재위기간이 충분하였을 것이나,
    이 분의 메인 게임은 아직이었다.

    사반세기에 걸쳐, 확장된 고구려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했던 장수왕에게는 아직 50여 년의 잔여 수명과, 남하 정책이라는 그의 인생을 특징짓는 과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작은 신라였다.
    광개토대왕에 의해 속국으로 전락한 신라에는 고구려군이 주둔해 있었는데,
    재위 29년경 신라가 이들을 몰살시키고 느닷없이 독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립한 신라는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대립하였는데,
    광개토대왕이었으면 당장에 요절을 내었겠지만,
    그의 아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10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신라의 변경을 두들기기 시작하였고,
    재위  57년에서야 신라의 실직주성을 점령하였다.
    아버지에 비해 참으로 느린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신라가 호랑이 콧털을 뽑는 동안 백제도 가만히만 있지는 않아서, 
    변경을 침입하는 등 반 고구려 정책을 노골화 하였다.
    그리고 개로왕 국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개로왕이 북위에 명문의 국서를 보내 고구려 침공을 부탁한 사건인데,
    고구려의 눈치를 보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북위는,
    침공은 커녕 고구려에게 백제의 청원을 알려주었다.
    이에 열받은 장수왕은 백제와 전면전을 결심하였으나, 
    시간이 많은 그답게 간첩 도림을 파견하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였고,
    재위 63년 드디어 백제를 침공하였다.
    행동은 느렸으나 광개토대왕의 아들답게 한성 함락시키고, 개로왕의 목을 베었으며
    대전 근방까지 진출하여 성을 쌓았다.
    백제는 아신왕대에 이어 또 한 번 망한 셈인데,
    이렇게 자주 망했으면서도 계속 재기한 그 저력은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
    곡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백제를 박살 낸 후 이번에는 북쪽으로 눈을 돌려, 
    유연과 대흥안령 지역의 말의 산지, 지우두의 분할을 시도하였다 .
    분할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몽골지역에서 고구려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거란은 확실히 박살 낸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일이 일단락 된 후 재위 77년에 신라를 공격하였다.
    초전에는 파죽지세로 신라 북변의 7개성을 함락 시키고 서라벌로 진격하였으나,
    그동안 재기한 백제, 가야 그리고 신라 연합군의 저항으로 신라의 재복속에는 실패하였다.
    백제를 박살낸 후 그 여세를 몰아 신라까지 바로 공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영토를 크게 넓혔고 중원 땅에 고구려비를 세웠다. 이때의 연세가 97세, 
    그로부터 한 1년 남짓 더 살다가 길고 긴 인생과 재위를 마쳤다.
    향년 98세, 무려 79년 2개월간의 재위였다. 아마도 세계 최장 재위 기록일 것이다. 연호는 건흥.

    광개토대왕에 비해 전공이 화려하지 않고 기간이 길어, 광개토대왕만큼의 열광을 끌어내진 못하지만,
    고구려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임금이었다.
    공격보다는 수성에 능했고, 무엇보다 명이 긴 덕분에 오랫동안 정국이 안정되어,
    고구려의 전성기를 길게 유지할 수 있었다.
    장수왕이 신라와 백제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삼국통일을 완수했더라면,
    이후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놈들의 동북공정에 열 받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완전 통일은 어려웠을 것이고,
    설령 통일을 완수했다 해도 바로 재기하는 것을 막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신화처럼 5세기를 지배했던 위대한 장수왕.
    좁아터진 한반도에 붙박혀 우리끼리 아옹다옹하는 못난 후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고구려 : 19대 광개토대왕, 한국의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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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391년, 우리 민족 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 군주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성함은 고 담덕,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대왕의 치세는 당대의 한반도 패권국이자 살조의 원수인 백제에 대한 복수로 시작되었다.

    즉위한 지 석달도 안되어 4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를 쳤고,
    삽시간에 석현성 등 10여개의 성을 함락시켰는데,
    이때의 백제왕은 진사왕으로,
    나름 능력있는 왕이었으나 고구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후 백제가 실지 회복을 위해 변경을 침략하자 장수를 보내 막는 한편,
    거란을 정벌하여 소수림왕 때 잡혀갔던 1만 여 명의 백성들을 되찾았으며,
    백제의 요충지 관미성을 빼앗아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이로 인해 백제의 진사왕은 암살을 당하였고 아신왕이 즉위하였는데,
    쿠데타의 명분이기도 하였을 것이므로 아신왕은 고구려에 집착하여 매년 공격하였으나,
    대왕의 고구려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염수로 진출하여 거란의 일파로 추정되는 패려의 6~700 영(단위)을 쳐부수고 수없이 많은 소, 말,
    양떼를 노획하였다.
    이듬해 백제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아리수 이북의 58개 성, 700여 개 촌락을 점령하고 위례성을 포위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았다.
    이번에도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완승한 것이다.
    백제의 항복을 받은 후에는 숙신을 정벌하여 동북 국경 지대를 안정시켰다.

    항복까지 했으면서도 근성의 아신왕은 여전히 전의를 불태워, 
    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적대하였는데,
    백제의 외교가 결실을 맺어 왜가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5만 대군을 파견하여 왜군을 박살내며 신라를 구원하였고,
    신라왕을 내물왕에서 실성왕으로 교체하면서 신라를 보호국으로 삼았다.
    고구려 주력군이 신라에서 왜군을 격퇴하고 있을 때,
    후연이 침입하여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시키고 700여 리의 땅을 탈취하면서,
    후연과의 8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신라쪽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후연에 보복전을 펼쳐 숙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404년에는 대방 지역으로 쳐들어 온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궤멸시켰으며,
    바로 이어 후연을 치고 연군까지 공격하였다.
    보복을 위해 쳐들어온 후연군을 요동성, 목저성 등에서 격파하여 요동 장악을 확고히 하였고.
    이듬해에는 5만 군대를 동원하여 후연 군대를 격파하고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하였으며,
    돌아오는 길에 6개 성을 점령하였다.

    고구려와 8년 동안 끊임 없이 치고 받던 후연이 풍발의 쿠데타로 멸망하고,
    후연 황실에 양자로 있던 고구려계 모용운이 북연을 건국하자,
    모용운의 고씨로의 복귀를 허락하고 고구려 우위의 우호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쪽 국경을 안정시켰다.
    410년에는 그동안 세력을 키운, 마지막 남은 두통거리 동부여를 공격하여 굴복시키면서,
    동서남북의 모든 적을 굴복시키고
    412년 재위 22년 만에 39세를 일기로 서거하여 국강상에 묻혔다.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연호는 영락이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멸망 후 한동안 잊혀져 있었으나,
    근대 이후 우리 민족이 외세에 시달리다 주권까지 잃게 되었을 때,
    만주에서 광개토왕릉비가 발견되면서 그 업적이 재조명되었다.
    비에 새겨진 기록은 삼국사기 등의 사서의 기록과 서로 보완하며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자존심에 상처 받은 식민 상태의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대왕에 대한 평가는 서로 상반되어,
    한 쪽에서는 민족혼의 상징으로서 거의 신격화 되어 마치 알렉산더처럼 취급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중국이 분열되어 있던 시기에 만주에서 떵떵거리던 운 좋은 싸움꾼처럼 폄훼하기도
    하는데,
    어느 입장을 취하든 광개토대왕이 우리 민족 사상 드물게 화려한 전공을 쌓은 최고의 정복군주인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화려한 외정에 비해 내정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빈약한데,
    광개토왕릉비에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는 기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22년간 동서남북으로 치달리며 끊임없이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 따순 세월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한 번만 치러도 나라가 휘청거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대왕은 약 5만 정도의 전문 전투 집단을 운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주로 전쟁을 전담하였고 또 매번 이겼기 때문에 막대한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가만히 앉아서 전쟁특수만 누리면 되었고.
    따라서 재위기간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어도 그 흔한 반란 한 번 없을 정도로 정국이 안정되었으며, 
    백성들의 지지까지 받는 아주 이상적인 군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대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고구려는 고국원왕 때의 빈사 상태에서 막 벗어난 시기로,
    선왕 고국양왕의 치세에서 알 수 있듯이,
    남쪽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백제에 힘으로 밀리고, 서쪽은 후연의 준동에 전전긍긍하였으며, 
    북쪽은 거란이 수시로 침입하여 약탈을 하였고,
    숙신과 동부여가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등 그야 말로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사방이 뺑 돌아 목을 조여 오는 상황에서 18세의 홍안 소년이 선택한 방법은 전쟁이었다.

    이러한 용기를 낸 소년도 대단하지만 따라준 병사들은 더 대단하다 하겠다.
    병사들이 처음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을 리는 만무하나,
    즉위 후 첫 전투에서 뛰어난 용병술로 백제를 박살내고, 동시에 거란까지 정리해버리는 솜씨를 보고
    차츰 따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이 쌈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므로,
    포상, 전리품의 분배 등에서도 충분한 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전쟁이 거듭되면서 이들은 대왕에게 더욱 열광하게 되었고,
    무패의 전문 전투 집단이 되어 갔을 것이다.

    무적의 군대로 후연과 싸워 요동을 확보하고 영토로 삼았으면서도,
    신라와 백제를 남겨놓아 후대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원망스러운 평이 많으나,
    이는 대왕의 실책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인문지리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한반도는 고래로 만주에 비해 기후가 온화하고 농사지을 땅이 많아 인구 밀도가 높았는데,
    산지도 많아 방어에 용이하였고, 각지의 호족들 또한 만만찮은 무력으로 할거하고 있어,
    요동과 달리 일거에 먹어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신라를 속국화하고 백제를 반속국화함으로써,
    동질성의 씨를 뿌렸고, 이후 삼한통일이 한반도 구성 주민들의 명제가 되게 하였다.

    민족혼의 화신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대왕이었다.

    고구려 : 18대 고국양왕, 다시 요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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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4년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서거하여 오랜만에 형제 상속으로 왕위에 올랐다.

    휘는 이련 또는 어지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위대한 아들을 둔 아버지 정도의 이미지이나,
    이 분도 만만한 왕은 아니어서,
    385년 4만의 병사를 동원하여 후연을 공격하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요동을 점령, 통치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이제 막 창업하여 기세가 등등한 후연이어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도로 빼앗기고 만 것이 아쉽기는 하나,
    후대의 완전 점령 및 영토화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의미는 상당하다.

    다음 해에 우리의 호프 담덕을 태자로 임명하였고,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결과는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
    가문과 기근으로 고생하는 사이 백제의 침입을 받았고,
    390년 진사왕에게 도곡성을 빼앗겼다.
    392년, 신라로 부터 이름도 이상한 실성을 인질로 받았다.
    전성기의 백제에 시달린 신라가 고구려에 의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신라 속국화의 시작이므로 업적으로 보아 무방하다.
    3월에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였다는데, 고구려에 아직까지 사직이 없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그리고 5월에 서거하여 고국양에 묻혔다. 7년의 짧은 재위였다 .

    위대한 형님과 아들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고,
    시호가 고국원왕과 비슷하여 뭔가 시원찮게 느껴지지만,
    위,아래로 치고받으며 고구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불교를 장려하고, 사직을 세우는 등 왕실의 권위를 높여 후대의 최전성기를 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명군이었다.

    중.고교생 교복 지원, 내년부터 인당 30만원씩 지원, 강원교육청 분담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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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당 30만원씩 교복비 지원 분담금, 강원교육청 65%, 강원도 20%, 시.군 15%
    민병희 교육감, “무상교복 지원 통해 교육복지 완성해”

    [수완뉴스=김동주 기자] 강원도교육청(교육감 민병희)은 2020년부터 도내 18개 시·군의 중·고등학교 신입생 26,497명에게 1인당 30만원 범위에서 교복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교복비 지원사업은 민병희 교육감 3기 공약으로, 모든 지역,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균등한 조건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는데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이다.

    강원도교육청이 지난해 교육행정협의회를 통해 지자체와 협력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합의하고 1년여 동안 강원도 및 시·군과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그동안 시군 분담률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당초 도교육청은 지자체 50% 분담을 제안했지만 지자체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후 도교육청 60%, 지자체 40%를 제안하고 재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6일 열린 시장군수협의회에서 도내 시·군의 15% 분담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강원도교육청은 당초 계획대로 도내 모든 시·군 학생들이 차별 없이 교복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교육청 분담률을 65%로 상향하기로 결정하고, 도 20%, 시·군 15%로 내년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민병희 교육감은 “강원도교육청이 조금 더 부담을 지더라도 분담율 조정에 종지부를 찍고자한다. 교육공공성을 위한 교복비 지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사는 지역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차별적 지원을 받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단했다”며 “도민들에게 돈 안드는 교육을 약속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에 이어 무상교복지원을 마무리 지음으로 실질적인 교육복지를 실현하고자 한다.” 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스윕포커스, 수완뉴스에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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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본 단체 스윕포커스 운영진은 서울에 소재한 한국프레스센터 1층 스타벅스에서 회의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수완뉴스’ 김동주 대표님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스윕포커스 운영진들은 지난 9월부터 수완뉴스와의 협업을 준비해왔고 이는 작금의 단체형태로는 제대로된 단체운영이 힘들다는 것을 토론하는 장으로 발전되어 수완뉴스와의 인수합병을 추진하게되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9일 M&A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스윕포커스가 한차례 더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윕포커스는 수완뉴스의 청소년언론 브랜드 형식으로 운영이 될 예정입니다. 또한 다양한 컨텐츠의 개발에도 힘을 쓸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많은 발전에 대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윕포커스 운영진 일동-

    국토교통부 2년 반 중간평가와 새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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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11.9일을 기점으로 지난 2년 반의 시간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향후 집중해야 할 과제를 점검했다.

    국토부는 지난 2년 반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에 첫걸음을 내딛고 실수요자의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30만호 공급 계획을 확정하는 한편, 주거복지 강화를 위한 주거복지로드맵과 대도시권 광역교통문제 해결의 청사진 제시, 일자리 로드맵 2.0 수립을 통해, 주택과 교통, 일자리분야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하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한 건설산업, 운수산업의 오래된 현안을 대타협으로 원만히 해결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통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은 성과로, 국민생명과 직결된 건설안전사고가 근절되지 않고, 전통산업과 신산업간 대립으로 혁신성장이 더뎌지고 있는 점 등은 미진했다고 평가하고, 향후 역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중간평가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면서, “주거복지, 국민안전, 교통편익 강화, 균형발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년 예산안을 작년 대비 2.2조원 증액 편성한 만큼, 정부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위하여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 정부 출범 당시 약속드렸던 바와 같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편집국 보도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14일) 기상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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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 전망]
    □ (예비소집일, 13일) 북서쪽으로부터 차고 건조한 공기가 강하게 남하하여 기존에 따뜻한 공기와 만나면서 형성된 저기압의
    영향으로 오후~밤에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과 전라도에 비가 내리겠고, 경상도와 제주도는 구름만 끼겠습니다.

    □ (수능일, 14일) 대기 하층(고도 1.5km 내외) 영하 5도 이하의 찬 공기가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서해상에서는 20도 이상의
    해기차(해수면 온도와 1.5km 상공 온도의 차)로 인해 눈구름대가 만들어지겠고, 바람을 따라 서해안으로 유입되겠습니다.
    이 영향으로 충청남도, 전라도에서는 주로 서쪽지방을 중심으로 새벽~밤에 비 또는 눈이 내리겠으니, 아침 출근길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 (15일) 우리나라 북서쪽으로부터 고기압이 점차 접근하면서 전국이 오전부터 점차 맑아지겠습니다.

    ※ 상세한 지역별 예상 강수량은 추후 발표되는 최신 기상정보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기온 전망]
    □ 13일(수) 오후부터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우리나라로 남하함에 따라 기온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여, 수능 당일인
    14일(목) 아침에는 기온이 전날에 비해 2~7도 가량 크게 낮겠고, 서울과 수원은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한파특보 가능성이 있으니, 최신 기상정보를 확인하기 바랍니다.
    ○ 특히, 13일 오후~14일은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5~10도 가량 더 낮아 매우 춥겠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하기
    바라며, 수험생은 따뜻한 옷을 준비하는 등 체온관리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강풍·해상 전망]
    □ (육상) 13일 오후~14일에는 서해안을 중심으로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20m 내외의 강한 바람이 불겠고, 점차 전국 해안지방에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강풍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또한 그 밖의 지역에서도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으니,
    강풍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 (해상) 해상에서도 바람이 점차 강해져 13일 오후에 서해상을 시작으로 14일에는 전해상의 물결이 2~5m로 높게 일면서
    풍랑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으니, 해상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각별히 유의하고, 특히 도서지역 수험생들은 사전에
    대비하기 바랍니다.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 기상정보’ 제공
    □ 날씨누리 및 모바일 웹 첫 화면 바로가기, 알림판에서 확인
    – 시험장 이름(학교명)으로 날씨 조회 가능
    □ 기상 지원 기간: 11월 8일(금)~11월 15일(금)
    □ 누리집 주소: www.weather.go.kr/weather/special/special_exam_03.jsp

    자료제공= 기상청

    지역발전투자협약 확대의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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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지역발전투자협약 제도를 활용하여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싶은 지자체나 중앙부처 누구든지 이를 쉽게 활용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협약의 체결과 운영 등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정한 ‘지역발전투자협약 운영지침’을 고시한다고 밝혔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지역발전투자협약 제도의 간사부처인 국토부가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하고 다양한 지역사업에의 확대 적용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지자체와 관계기관의 의견 수렴 및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의결(10.23)을 거쳐 11.11일 최종 고시한다.

    동 지침은 지역발전투자협약의 기본원칙, 대상사업, 재원조달, 협약안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과 제출 필요서류 등 협약 추진절차, 협약의 변경과 해약, 협약사업에 대한 지원내용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누구라도 쉽게 지역발전투자협약 방식을 적용하고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국토교통부 한정희 지역정책과장은 “앞으로 국토부는 지역발전투자협약 등을 통해 다양한 지역사업을 지원하여 지역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지역인구 감소에도 적극 대응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편집국 보도팀

    정보기술 선도하는 한·아세안 등 20개국 장애청소년들이 부산에 모여 축제의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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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와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인규, 이하 조직위), LG(부회장 권영수)는 오는 11월 25일(월) 부터 29일(금)까지 부산에서 한·아세안 등 20개국 장애청소년 정보기술 선도자(IT 리더) 100여 명이 모여 정보통신기술(IT) 실력을 겨루는 축제의 장을 연다고 밝혔다.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등 장애청소년들의 인터넷 검색, MS-Office 활용, 영상 촬영·편집, 코딩 기술 등의 정보 활용 능력 향상과 진학·취업 등 사회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장애인재활협회(협회장 김인규)와 LG가 함께 2011년부터 매년 추진해 온 국제 개발협력 사업이다.

    올해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부대행사로 개최되며, 우리나라 외에도 아세안 8개국, 동북·중앙·서남아시아 9개국, 영국·에티오피아 장애청소년들까지 참가하는 국제적인 대회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1992년부터 우리나라 장애청소년들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국내 IT대회를 개최해왔다.

    2011년부터는 보건복지부·LG와 협력하여 매년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며 국제대회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8년간 2,193명의 장애청소년과 각 국의 정부 당국자 등이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 대회에 참가했으며, 올해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11.25(월)~11.26(화)>를 기념하여 2014년에 이어 부산에서 다시 한 번 열리게 된다.

    이번 대회에는 20개국에서 각각 예선전을 통과한 장애청소년 100여 명이 참가하며, 개인전과 단체전 각각 두 종목씩 진행된다.

    개인전은 실생활에 필요하거나 긴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능력을 평가하는 e라이프맵(LifeMap) 챌린지와 학교·직장 생활에 필요한 MS-Office프로그램 활용능력을 평가하는 e툴(Tool) 챌린지 두 개 종목으로 진행한다.

    IT 활용 능력뿐만 아니라 협동심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단체전은 국가별로 4명이 1팀을 이루어 총 23개 팀이 참가한다.

    특히 영상 촬영·편집 능력 등을 통해 ‘유튜브 창작자’로서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e콘텐츠(eContents) 챌린지는 지난해에 새로 도입한 경기 종목이다.

    e크리이에티브(eCreative) 챌린지는 그간 코딩 기술을 활용한 게임 창작능력을 평가해왔으나, 이번 대회부터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하여 자율주행자동차 조립과 운영을 평가하게 된다.

    올해 행사에는 장애 통계와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주제로
    ‘혁신과 통합(Innovation and Inclusion)’ 정책토론회(포럼)도 개최한다.

    포럼 시작에 앞서 보건복지부 배병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제3차 아·태장애인10년(2013~2022)’의 10개의 목표, 27개의 세부목표, 62개의 지표를 계획된 시간동안 달성할 수 있도록 이행계획을 수립·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인천전략’ 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다.

    오준 전(前) 유엔대사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토론에서는 장애관련 통계 등 국제사회 공동 의제(아젠다) 중심의 토론이 이루어지고, 각 국의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 준비 과정 및 성과 등에 대한 사례도 발표된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LG전자, 국내 장애계 관계자 등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국제 장애계 이슈와 대회 전반에 대한 다양한 논의 및 사회관계망을 형성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11월 28일(목)에 진행되는 시상식에는 2018년도 대회 우승자인 파이자 푸트리 아딜라(Fayza Putri Adila · 당시 16세, 청각 장애, 인도네시아)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과 앞으로의 포부 등을 전할 예정이다.

    시상식 후에는 유엔공원과 오륙도 등에서 문화 체험을 한 후, 공식 일정을 마치고 29일(금)부터 귀국길에 오른다.

    김인규 조직위원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국제공인 장애청소년 IT대회인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 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충실히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편집국 보도팀

    국가상징 다양한 디자인으로 표현,대한민국 국가상징 디자인 공모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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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나 무궁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른바 국가상징을 주제로 마련한 ‘제7회 대한민국 국가상징 디자인공모전’에서 ‘태극구성(Taegeuk Composition)’의 최우영 씨 등 총 38명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국가상징 디자인 공모전은 국가상징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고 친근감을 제고하기 위해 2003년 처음 시작됐다. 2007년 3회부터는 3년 주기로 개최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16일까지 일반부, 대학생부, 고등학생부로 나눠 제품과 그래픽, 영상 작품을 공모한 결과 총 1,087점이 접수됐으며, 1·2차 심사를 거쳐 최종 38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무총리상은 태극무늬와 4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재구성한 ‘태극구성(Taegeuk Composition)’의 최우영 씨(일반부)와, 종묘대제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종묘대제’의 안해든 학생(대학생부, 서울시립대학교), 윷놀이를 소재로 한 ‘운수대통 윷점 윷놀이’의 박현 학생(고등학생부, 경기고등학교)에게 돌아갔다.

    그 밖의 수상자 35명에게도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12개 기관의 기관장 상과 소정의 상금이 수여된다.

    편집국 보도팀

    문 대통령 주재 반부패정책협의회…공공부문 공정채용 강화방안도 마련 “‘전관특혜’ 근절·입시관련 위법 학원 ‘원스트라이크 아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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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전관특혜 근절과 사교육시장 불공정성 해소, 공공부문 공정채용 확립 등 국민적 개혁 요구가 높은 분야의 공정성 강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법조계의 고질적 전관특혜를 근절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입시와 관련한 중대한 위법행위를 한 학원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회의에서는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반칙과 특권, 다양한 불공정의 모습들을 개혁해 공정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불공정에 대한 국민적 개혁요구가 큰 ▲전관특혜 근절방안 ▲입시학원 등 사교육시장 불공정성 해소방안 ▲공공부문 공정채용 확립과 민간 확산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 성과와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보고도 함께 이뤄졌다.

    먼저 법무부는 공정한 형사사법절차를 보장하고 사법권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해 법조계의 ‘전관특혜’를 근절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검찰, 대한변협, 학계에서 추천된 위원으로 ‘법조계 전관특혜 근절 TF’를 구성해 새로운 규제방안은 물론 현행 제도의 실효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 입법과 제도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새롭게 구성된 TF에서는 단기적으로 법원에서 시행중인 ‘연고관계 변호사 회피·재배당절차’를 검찰수사 단계에 도입하고, 전관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의 적정처리 여부에 대한 점검 방안을 구체화할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본인사건 취급제한 및 몰래변론 금지 위반 등 변호사법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수준과 징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수임제한 규정을 강화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인사혁신처는 고위공직자의 전관특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여전한 상황임을 무겁게 받아들여 국민 눈높이에 맞는 엄격한 취업심사와 함께 재취업 이후 퇴직자 행위에 대한 상시 관리체계를 확립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고위공직자 재취업 시 엄정 심사, 퇴직자 대상 홍보 강화 등은 최대한 신속히 시행하기로 했다.

    안전·방산·사학 등 민관유착 우려 분야로의 취업제한기관 확대, 퇴직자의 직무 관련 청탁·알선에 대해 누구든 신고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만큼 개정취지에 맞게 하위법령 정비를 신속히 해나갈 방침이다.

    행위제한 위반자에 대한 해임요구, 행위제한 신고센터 개설, 윤리위원회 민간위원 증원 등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전관특혜 근절을 위해 고위공직자 퇴직 후 2~3년을 집중관리 시기로 설정하고, 현장정보 수집 강화와 함께 신고내용·재산 변동현황 등을 살펴 탈루혐의자에 대한 세무검증을 철저히 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변호사·세무사 등 퇴직공무원 진출분야의 세무조사 비중을 확대하고 그간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했던 공정거래, 관세, 특허 등의 영역까지 포괄해 검증해 나갈 예정이다.

    교육부는 교육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대입제도를 개선하는 일과 함께 사교육 시장을 통해 입시제도가 불공정하게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찰청, 국세청 등과 공동으로 ‘입시학원 등 특별점검 협의회’를 구성해 입시학원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학원법 개정을 추진해 중대 위법행위(자소서 대필·대작, 교습비 초과징수 등)가 드러난 입시학원의 명단을 공개하고, 중대한 입시 관련 위법행위를 한 학원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1차에 ‘등록말소’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행정처분 기준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채용비리 단속 강화 및 공정채용 제도 개선·보완 등을 통해 공공부문부터 공정채용 문화를 확립하고 이를 민간부문까지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부문부터 친인척 채용비리 관리 강화, 공공기관 정기 전수조사 등을 통해 채용비리를 방지하면서 능력중심 채용 문화가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블라인드 채용의 이행력을 높이며, 취업준비생과 공공기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공정채용제도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가칭)공공기관 공정채용 협의회’를 운영하는 한편, 공정채용 기법에 대한 홍보 및 컨설팅, 우수사례 선정·시상, 채용절차법 현장 안착 추진 등을 통해 공정채용을 민간에 확산하기로 했다.

    권익위는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로 개편된 취지에 맞춰 공정성 제고를 위한 대책마련을 위해 기재부, 교육부, 고용부를 필수 참석 대상 부처로 추가하고 향후 대국민 의견수렴 등 국민 참여를 통해 법령·제도에 내재된 합법적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혁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국 보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