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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6일 오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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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괜찮아, 시작이 다른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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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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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진 pixabay

        

    시작이라는 단어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14살이었던 제게 시작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자퇴의 의미는 더욱 그랬습니다. ‘낯설지만 기대되고 꿈꾸지만 위험할 것만 같은 것,’ 그것이 학교 밖에 대한 첫 느낌이었습니다.

    자퇴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 맴돈 건 중학교 1학년, 14살 때였습니다. 꿈이 없던 저는 처음으로 꿈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기엔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자퇴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그 후로 만났던 가족의 반대. 그리고 공부와 미래에 대한 고민, 아마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도 겪었던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은 모든 선택이 그렇듯 자퇴도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중학생이라는 신분. 생각보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또한 많은 용기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학교라는 체제 속에서 바라보는 자퇴생은 어쩌면 이방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자퇴를 하던 14살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수많은 어른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 그 질문은 자퇴에 대한 무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퇴의 무게는 제가 처한 현실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학교 밖을 나가고 싶다는 제 말을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학교로부터 이해받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삶을 뒤바꿀 큰 선택을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듯 제가 자퇴를 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힘들었던 것은 자퇴생이라는 이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주변의 반대와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었습니다. 학교 밖에 나가기 위한 과정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을 거쳐야 했고, 수없이 많은 소문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모든 과정을 거치고 받게 된 자퇴서를 보며 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흘렸던 제 눈물의 의미는 아마 그만큼의 간절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퇴서를 낸 그날의 기억은 제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 복도를 뛰어다니던 모습, 그 모습들은 제가 학생으로서 마지막으로 보는 학교였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제게 그날의 그 모습은 특별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제 모습과 작별을 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조금 늦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작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수완뉴스 나지영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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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감각의 인지로 계발하는 디자인 창의성’ (빈스앤베리즈 태평로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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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조윤서)

    안녕하세요? ‘감각의 인지로 계발하는 디자인 창의성’ 을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조윤서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물들을 관찰하다보면, 시각, 촉각, 청각, 후각까지 느껴질 수는 있어도 유일하게 미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미각은 입 안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각이기 때문에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왜 미각은 혀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맛 평가를 한 결과, 혀는 혀 위와 밑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혀 위의 맛이 미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미각은 혀 위와 아래에서 모두 느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입천장, 양 볼, 목구멍 등 입 안 전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기 때문에 오감 중 미각은 이 세상에 있는 사물들에서 느껴지는 것 이외에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맛을 느끼다가도 다시 집중이 쏠리는 맛이 미각입니다. 미각 맛을 집중적으로 느끼다보면 미각에서 느껴지는 맛에 순서가 있다는 것이 자각됩니다. 다시 말해, 미각 자체로만 놓고 보면 상큼한 맛 뒤에 단 맛이 오는데, 그 사이로 시큼한 맛이 치고 오는 식으로 순간적인 시간 차이를 두고 전해지는 것이 인지됩니다. 이것을 전체 감각으로 확장시켜 보면 차가운 맛 뒤에 매운 맛이 혀를 찌르는데, 입천장에서 콕 쏘는 화한 맛이 느껴지고, 혀를 찌른 매운 맛 뒤로 짭짤한 맛이 혀를 휘감으면서 들어옵니다.

     

    전체 감각을 확장시켰을 때에는 여러 감각들이 뒤엉키는 듯 하지만 이처럼 순서를 지켜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인지됩니다. 이것이 축적되면 자신이 현재 어떤 맛을 느끼고 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자극받아 인지되고 있으며 바로 전에 먹었던 맛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식사 후 그 모든 과정들이 새록새록 기억됩니다.

     

    그럼 실제 사례를 통해 보는 방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맛을 표현하는 방법에 소개할 곳은 ‘빈스앤베리즈 태평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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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스앤베리즈 태평로점 입구, 사진 촬영 조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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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스앤베리즈 태평로점 내부, 사진 촬영 : 조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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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지 않은 키스링 갈릭, 사진 촬영 : 조윤서)

    빈스앤베리즈 빵집 간판에 ‘교황님께서 선택하신 Kiss Ring 마늘빵 (100% 천연발효와 국내산 마늘을 사용하여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페스츄리. 커피와 환상의 조화. 판매 1위 마늘빵)’이라고 나와 있어서 ‘교황님께서 드신 빵은 어떤 맛일까?’란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 때 같이 주문한 망고 베리 주스는 탁월한 선택이었죠. 간판에는 커피와의 궁합이 최고라고 나와 있었지만 망고 베리 주스도 궁합이 최고였습니다. 만약 이 빵을 드시는 분들께서는 망고 베리 주스와 함께 드셔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키스링 갈릭빵은 버터 맛과 고소한 맛만으로도 충분히 고급스러움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 빵과 망고 베리 주스를 함께 먹었을 때, 입 안에서 뜨끈한 맛과 시원한 맛을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키스릭 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빵 안에는 버터가 발라져 있어서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이했던 것은 버터에서 달콤한 맛도 느껴졌다는 것이죠. 어쩌면 빵 층에 있었던 달콤함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 맛이 망고 베리 주스의 단 맛과 겹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키스링 갈릭이 나왔을 때 잘라진 틈 사이로 뜨거운 증기가 활발하게 뿜어져 나왔고, 그 증기 속에 고소한 버터향을 맡았더니 저절로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풍족함이 느껴지면서 온 몸이 들떠 활력이 솟구쳤습니다. 빵을 베어물기 위해 빵을 포크로 집어 가져올 때에도 약한 버터향과 달콤한 크로와상 냄새의 빵 향이 합쳐져서 맡아지니 침을 꿀떡 삼켰고 향 배합이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빵을 베어물 때, 이빨이 빵에 닿으면서 ‘빵의 윗면 층이 구운 크로와상처럼 한 번에 푹 파이지 않는 딱딱함을 갖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려고 한 순간 이빨이 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마치 빵 속에 커다란 빈 공간 또는 싱크홀에 쑥 들어가는 것처럼 이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통과되면서 그 빈 공간 속에 있던 공기층은 눌려졌고, 그 속의 고급스러운 버터향, 고소한 빵 향의 열기가 코를 순식간에 덮쳐서 아주 놀랐고, 만족감이 증폭되었습니다.

     

    그 다음 빈 공간을 기준으로 빵의 윗면과 밑면이 윗니와 아랫니에 의해 서로 만난 뒤 겉으로는 힘을 주었지만 속은 힘을 주지 않아도 잘라졌고, 통과되어 잘라지는 과정의 느낌은 부드럽고, 폭신하며 포동포동하였습니다.

    씹을 때 두께감이 있어서 양적인 만족감도 들었지만 빵의 겉에서 간간함과 바삭함이 느껴졌고, 크로와상처럼 겉의 가루들이 빵과 분리되어 이빨에 부서질 때 얇고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빵 안에는 버터가 발라져 있어서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것은 버터에서 달콤한 맛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빵 층에 있었던 달콤함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는 망고 베리 주스의 단 맛과 겹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즉, 키스링 갈릭빵은 버터 맛과 고소한 맛만으로도 충분히 고급스러움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 빵과 망고 베리 주스를 함께 먹었을 때, 입 안에서 뜨끈한 맛과 시원한 맛을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망고 베리 주스는 베리 혼합액이 컵 둘레를 치고, 망고즙이 컵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주스였습니다. 베리가 혼합된 맛은 포도보다 더 새콤하고 시큼달콤하면서도, 진하여 무거운 듯하고 끝이 알싸한 블루베리 맛과 가까웠는데, 씨가 씹히는 촉감이 아주 작고 낮게 톡톡 씹히는 것으로 봐서는 딸기 씨와 비슷했습니다.

     

     

    망고 베리 주스는 베리 혼합액이 컵 둘레를 치고, 망고즙이 컵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주스였습니다. 베리가 혼합된 맛은 포도보다 더 새콤하고 시큼달콤하면서도, 진하여 무거운 듯하고 끝이 알싸한 블루베리 맛과 가까웠는데, 씨가 씹히는 촉감이 아주 작고 낮게 톡톡 씹히는 것으로 봐서는 딸기 씨와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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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운 키스링 갈릭, 보라색 주스는 베리 블라썸, 노란 빛깔의 주스는 망고 베리 주스, 사진 촬영 : 조윤서)

     

    키스링 갈릭에서 느끼한 맛을 느끼기 전, ‘느끼한 맛을 먹은 후에는 신 맛을 먹어야 분위기 전환이 된다’는 맛 평가 이론을 떠올렸습니다. 그 후 키스링 갈릭 빵에서 약간 느끼하다고 받아들일 즈음 베리블라썸 주스를 마셨지요. 그런데, 느끼함이 해소가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베리블라썸 주스는 신 맛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베리맛을 진한 달콤함으로 만든 것이기에 맛 평가 이론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상큼하고 달콤한 맛을 모두 가지고 있는 망고 베리 주스를 마셨습니다. 그 때, 느끼한 맛을 망고 맛이 싸악 걷어줘서 개운했고, 개운함 사이로 혼합된 베리 맛이 스윽 들어와 혀의 양쪽 끝과 입천장이 약간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느끼함을 해결하고자 주스를 마시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어 개운함과 따가움을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론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습니다.

     

    이번에는 키스링 갈릭과 망고베리 주스 맛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느끼고자 자유롭게 번갈아가며 여러 번 맛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따끈한 버터맛 사이로 망고베리 주스의 망고맛과 베리맛, 살얼음들이 침투하여 온도 간극이 확실히 벌어져서 뜨끈한 맛과 시원한 맛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느껴졌습니다. 뜨끈함은 시원함 쪽으로 옮겨타고 시원함은 그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면서 마침내 미지근함이라는 접점이 맞추어졌을 때, 빵은 흐물흐물해져서 목구멍으로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맛의 만족도는 다 먹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깊게 심취할수록 어떻게 빵의 맛이 변화되는지가 더 잘 전달되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교황님께서 드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맛을 표현하면 맛을 즐기면서 느껴지는 감동을 최대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먹을 때 맛의 반응을 글로 옮길 때와 말로 표현할 때는 느낌이 매우 다르죠. 맛을 표현하는 것은 맛에 대한 의사 전달입니다. 맛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을 때는 집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수완뉴스 조윤서 칼럼니스트([email protected])

    #2.세상이 바라본 ‘자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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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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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진 pixabay

     


    여러분은 오늘 하루, 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요?

    아마 여러분들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거나, 본인이 꿈꾸었던 여행을 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쁜 일상 속 잠시의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굉장히 큰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꿈꾸었던 학교 없는
    하루 역시 여행처럼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학교를 나오기 전, 제가 교과서 속에서 배운 세상은 정의롭고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
    속 세상은 시험문제에서만 답이 될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학생이라는
    이름 없이 처음 맞이한 현실은 소리 없는 전쟁터 그 자체였습니다. 자퇴생으로서의 첫 하루가 그러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을 것만 같은 일상도 평범한 학생이었던 저에게는 큰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학교에서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시간 이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든 어디를 가든 “왜 학교를 안 갔냐?” 는 물음은 반복되었고, 처음에는 쉽게 학교를 나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나하면자퇴생이다라는 대답 후에 나올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웠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반복되는 물음에 용기 내어 자퇴생이라는 말을 했을 때, 세상은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왔습니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세상이 바라보는 자퇴생은 문제아라는 현실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퇴생으로서의 하루가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주어진
    완벽한 자유는 마치 선물 같았습니다. 저의 경우, 제가 느낀 자유는 단순히 잠을 많이 잘 수 있고 ,TV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자유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가 느낀 자유란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자아성찰의 개념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바쁜 일상에
    치여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제가 해야 할 것에 대한 의무감에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을 못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몇몇 중학생들은 제게 자퇴생으로 살면 잠을 푹 자기도 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예능프로를
    맘껏 볼 수 있지 않?는 질문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용도로 사용 하는 건 개인의
    차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며칠간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보기도 하고, 잠을 실컷 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자퇴생이 가진 자유는 단순한 자유가 아닌 책임감을 지닌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제가 위에서 한말을 기억하시나요?

    여러분은 오늘 하루, 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찾으셨나요?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은 우리를 향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때로는 그 질문의 화살이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요?

    수완뉴스 나지영 칼럼니스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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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30원 이런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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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몬에서 제작한 최저시급제 홍보영상 (본 기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알바몬 출처.


    OECD 최저임금 ‘최하위 국가’, 정부의 노력 절실해…… 

     

    (수완뉴스=종합보도팀)지난 5일 고용노동부는 2016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6030원으로 최종 결정한뒤 고시하였다. 새롭게 변경된2016년 최저임금을 계산하면 1일(8시간 기준)을 일할시 4만8천2백4십원의 일급을 받게 된다. 또한 주 40시간의 일을 했을 경우를 계산(209시간)하면 백2십6만2백7십원의 급여를 받게된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작년 최저임금 5580원에서 45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올해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인한 영향을 받을 근로자들은 18.2%으로 총 3420천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에서 최저임금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제기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최저임금제에 대해  청소년의 생각은 어떨까?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대표 최인녕,www.alba.co.kr)이 최저임금 고시 전 3일부터 4일까지 아르바이트생 7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이 확정된 사실을 알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75.2%로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최저임금 인지수준은 높았으나, 만족도에서는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최저임금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미흡하다’라는 의견이 42.6%로 절반에 가까웠고 ‘매우 미흡하다’도 27.5%로 전체 70.1%가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반응은 전체 7.3%밖에 그치지 못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시급 6,030원은 사실상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저임금제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우리는 최저임금 1만원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떨까?

     

    일본은 최저임금이 엔화의 저화에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2011년 일본 최저임금은 737엔으로 우리나라돈으로 적용하면 11,000원이 넘는다. 일본이 최저임금을 737엔으로 높인 이후로 일본의 실업률의 현저히 떨어져 현재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밖에 다른 국가들을 보면 영국은 약 6파운드(약11,000원) 프랑스는 약 10유로(약13,000원)정도로 우리나라의 6030원보다 매우 높은 시급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OECD국가중 최하위에 다다를 정도로 매우 부족한 액수를 나타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이 시급한 상황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일본, 유럽 등의 나라들의 사례들을 보자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높이자 내수가 살아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고 있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의 인상을 해야 된다고 노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보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생존임금’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삶에 위기를 넣고 있다. 한시라도 정부가 앞장서서 최저임금을 높여 하루빨리 내수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종합보도팀 김종담 기자([email protected])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2030세대들의 향수 자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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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신세경 인스타그램

     

    (수완뉴스=정찬영)최근 ‘종이접기 아저씨’로 불리는 김영만(65) 종이문화재단 이사가 디지털TV를 통해 2030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3회째 MBC 1인 인터넷 방송(UCC) 프로그램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는 “종이접기 아저씨”로 기억되는 김영만 씨가 ‘영맨’으로 참여하고 있다. TV유치원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만큼 김영만 씨의 방송소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25일 마리텔 시청률은 평상시보다 높은 10.3%대로 집결되었다. 하지만 그의 출연여부보다 더 큰 관심을 얻은 받은 것은 바로 ‘영맨’의 방송태도였다. 그는 삭막한 사회생활로 지친 2030세대들에게 “코딱지들”, “아저씨는 미리 준비해왔어요”, “어려우면 엄마한테 부탁하세요.”와 같은 주옥같은 어록을 구사하며 동심을 자극했고, ‘엄마 방에 들어가 환갑이신 어머니께 테이프 좀 붙여 달라 해봐라. 얼마나 좋아하시겠느냐”, “이제 어른이 됐으니깐 잘 따라 할 수 있을 거다”라며 감동을 주었다. 이에 적지 않은 수의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다.

    또 1일의 방송에서는 17년 전 김영만 씨와 1년 간 방송을 같이한 배우 신세경과 뚝딱이가 17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깜짝 출연 하며 보는 이의 향수를 더더욱 자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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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나무위키

    8월 1일 ‘영맨’의 방송은 47,836명이 시청하여 47.5%의 점유율로 마리텔 1위를 기록하였다. 

    수완뉴스 특별취재 1팀 서기단팀 정찬영 학생기자([email protected]

      

     

    이러한 선글라스 어때? 독특한 강점의 밴딧 선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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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밴딧코리아

     

     

    (수완뉴스=온라인뉴스팀) 지난 2014년에 홍콩에서 최초 런칭된 이후, 2015년 5월 국내에서도 런칭을  시작하게된 밴딧 선글라스는 다양한 강점등으로 인해 온라인상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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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밴딧코리아

     

     

    우선 밴딧선글라스에서 밴딧의 의미는 ‘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의미 그대로 밴딧선글라스는 고객들에게 맞춤화 되어있다. 선글라스는 세트형으로 구입도 가능하지만, 각 개인의 취향별로 커스텀하여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밴딧선글라스만의 강점 역시 남다르다. 밴딧 선글라스의 랜즈 프레임은 새로운 TR-90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TR-90은 플라스틱 티타늄을 의미한다. 이 소재의 특성은 가볍고 유연하며 충격에 강하다는 것이다. 두개의 렌즈 역시 소재가 좀 남다르다.  렌즈의 소재는 열가소성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제작된​ ​  S20REVO 렌즈를 선택하여 만들어졌는데 UAV/UVB/UVC를 100% 차단하며 내구력 역시 강한편에 속한다. 이런 렌즈는 밴딧이 처할 수 있는 혹독한 상황속에서도 보호될 수 있다. 템플은 매우 가벼워서 물에 띄기도 하지만, 내구성이 상당한 강한편에 속한다. 또한 휘어지는 소재로 사용하였기에  변형이 자유로워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복구력 역시 좋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밴딧의 제품은 크게 리미트에디션과 프리미엄 제품등으로 나눠지는데, 밴딧의 리미트 에디션 제품으로는 ‘SALVATORE GIULIANO’ , ‘NED KELLY’가 있며, 프리미엄 제품으로는 편광렌즈를 사용한 ‘Premium P14’부터 ‘TT89’, ‘BK85’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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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밴딧코리아

     

     

    이러한 밴딧은  이상호, 이상민, 김지호와 같은 유명 개그맨들과 오나미, 안소미와 같은 유명 개그우먼들 그리고 연예인 신고은에게 제품을 협찬하면서 국내의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바가 있다

     

    현재 밴딧은 롯데백화점 샵인샵으로 입정예정에 있으며, 온라인으로는 자사의 홈페이지와 펀샵, 텐바이텐, 초켐몰, 바보사랑, 파비바온,1300K 등 여러 곳의 쇼핑몰 등을 통해 판매를 하고 있다. 밴딧의 제품에 관한 자세한 소개는 밴딧코리아(070-5035-9688​)로 연락하거나 자사홈페이지(http://www.baendit.co.kr/)을 참조하면 된다.

     

     

    수완뉴스 온라인뉴스팀([email protected])

    #1. ‘17살 대학생이 말하는 오늘 하루’-여러분의 오늘 하루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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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나지영)

     

    안녕하세요. ‘17살 대학생이 말하는 오늘 하루’로 학교 밖 이야기에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칼럼니스트 나지영입니다. 날씨는 태풍으로 인해 우중충하지만 칼럼의 첫 시작은 산뜻하게 하고 싶기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행복하고 기쁘셨나요? 아님 힘들고 지치셨나요?

    아마 오늘 하루,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사이에서 기분 좋은 일 또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오늘 하루, 큰 선택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루 1440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우리들을 찾아옵니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일들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특별함은 종종 삶의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물론 특별한 일이 늘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특별함조차 꺼려질 때도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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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 

     pixabay

     

    때로는 힘들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 이번 칼럼의 스토리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 곁에서 14살 자퇴생이 17살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학교 밖 생활’과 그 외에도 다른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진짜 학교 밖 이야기’를 보다 솔직하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여러분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엔 의구심이 드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조금은 낯선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6살 수민이(가명)는 다문화 가정 아이입니다. 수민이가 다니던 유치원엔 수민이만 피부색이 달랐습니다. 미술시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피부색과 똑같은 색을 살색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까만 피부를 본 수민이는 고개를 떨구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 이야기 속 여러분이 수민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 것 같나요?

    이야기 속 수민이는 편견이 만들어낸 상처에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검정색도 살색이 될 수 있고 흰색도 살색이 될 수 있는데도 수민이는 친구들이 내린 살색이라는 정의에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수민이의 이야기와 학교 밖 청소년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다름입니다. 때로는 도전의 의미를 또는 편견의 의미를 가진 다름은 또 다른 2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함또 다른 하나는 외로움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 친구들은 매일 입었던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 친구들과 학교를 같이 마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처음으로 다름을 느끼게 됩니다.

    다름 속에서 쌓이고 쌓인 외로움은 때론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회의감’, ‘두려움’, ‘불안감이라는 소용돌이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흔들린 만큼 더 단단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끝없는 넘어짐을 통해 또 다른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들은 이 거친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내었습니다.

    내일 하루도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용기 있게 삶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가장 소중한 순간을 살아나가고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에 적어 내려갔습니다.

     

    앞으로 하나 둘씩 펼쳐질 ‘17살 대학생이 말하는 오늘 하루를 기대해주세요!

     

    다음 이야기는

    #2 ‘괜찮아, 시작이 다른 것뿐이야.’입니다.

     

    수완뉴스 나지영 칼럼니스트([email protected])

    Source: New feed

    댓글창 개편 및 웹진 바로가기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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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수완뉴스 기술.운영 지원 입니다.

    기존 “댓글창”이 “소셜댓글”로 개편되어 기존의 “댓글창”을 제거하며, “소셜댓글”로 교체하였습니다.

    (다만, 소셜댓글은 기사 메뉴에만 적용되며 “BOARD” 메뉴는 소셜댓글이 출력되지 않으며, 제외 됩니다.)

     

    또한 웹진 사이트의 신설로 수완뉴스 홈페이지에도 웹진 사이트로 바로가기 할수 있는 “WEBJIN” 메뉴가 신설되었습니다.

     

    처리가 늦은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리며, 더욱 더 노력하는 기술.운영 지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로 마감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붕괴, 12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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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공사장모습, 사진 촬영 : 김종담)

     

     

    공사 무기한 연장, 합동안전검증단 조사중 

     

    (수완뉴스=김종담)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공사장 바닥이 일부 무너지면서 인부 12명이 아래로 추락해 총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31일 시공사인 신세계건설에 따르면 이날 오전 대구시 동구 신암동 복합환승센터 신축 공사장 지하 6층에서 콘크리트 공사를 하던 중 바닥이 아래로 꺼지면서 근로자 12명이 지하 7층으로 떨어졌다고 밝히었다. 아직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세계건설 측은 이번 사고에 대해 “거푸집 역할을 하는 바닥이 함몰했다”며 “무너진 것은 아니고 미끄럼틀처럼 한쪽이 기울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신세계건설 측은 정확한 사고의 원인에 대해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거푸집 철판 용접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본지의 기자가 신세계건설측에 취재를 요청하였지만 돌아가라는 답변만 받았기에, 이번 사고에 대한 의혹은 더욱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대구시는 이번 사고로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공사의 무기한 작업중단 조치를 내리고 시청·동구청 공무원, 신세계건설 관계자, 토목·기술전문가 등 10명으로 합동 점검단을 꾸려 안전 진단에 나섰다.

     

     

    ​종합보도팀 김종담 기자([email protected]) 

    The Korean Governments’ Efforts to Bolster the Korean Agricultural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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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정종호) The Korean economy’s shine is best known as the result of the “Miracle of the Han River,” which details a legendary rise from war ashes of the Korean War in the 1950s to holding title as an advanced economy in the 2000s. Among the biggest beneficiaries of this boost are the Korean IT industry and the automobile industry, enjoying even greater success with Korea’s liberalizing trade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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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exels 

     

    However, these effects did not extend to the agricultural industry. It failed to fare likewise and was almost put at risk by free trade agreements. To meet the Korean agricultural industry’s needs, the Korean government has put forth a string of efforts, such as promoting policies that encourage “returning back to farmlands” (RR: gwi nong) and categorizing agricultural products and fisheries as “sensitive items” in its various FTAs with other countries. (Note: Korea is the only country in the world that has FTA relations with the world’s three largest economies: the US, China, and the EU.)

     

    The government is currently supporting those people who plan on returning to agricultural lifestyle by providing them with the minimum amount of money they would need to settle down in agricultural lifestyle. On average, the government provides subsidies of around 100 million won to 120 million won. However, most of the people aren’t able to start farming only by the money they are provided with from the government. Statistics show that around 200 million won is needed to start farming. This means that people need to fill the gap of at least 80 million won on their own. 

     

    Now that people have invested a bulk of money to start farming, there must be some profits they should earn to make up the investments put into start farming. However, most farmers are only able to make a profit of around 20 million won annually. This shows that the farmers will take a longer time to cover up for the investments. 

     

    While the government is showing efforts to support the agricultural industry, it only provides a halfway bridge leading to farmlands, leaving potential domestic farmers in an even bigger predicament: is investing in a farming lifestyle worth it?

     

    On top of internal efforts to revive the Korean agricultural economy, external efforts are noteworthy as well. KORUS FTA, the FTA between Korea and U.S., was concluded in 2012. Inherent of an FTA is that it promotes tax-free trade among countries. However, the detrimental effects that it would have on the agricultural economy in Korea were tremendous, due to the fact that rice and other agricultural products are planted, grown and sold at much cheaper prices and in much bigger units in the U.S. than in Korea. 

     

    The free trades would persuade a lot of people into buying U.S. rice since U.S. would most likely sell good quality rice at cheaper prices than Korean rice to Korean customers. Considering that this would push Korean farmers out of the market, the government has classified rice and rice related crops as “Very Sensitive Products,” meaning that tariff elimination would not apply to these items. Labeling these items as such is another strand of the government’s efforts in protecting and supporting the agricultural econom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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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exels 

     

    Overall, the government of Korea is making efforts internally and externally to protect Korea’s agriculture. However, in reality, it takes a great amount of effort and risk for the people to start living in agricultural environment. Not everyone of those people was able to sustain agricultural life but give up and return back to city. Other than sufficient subsidies provided by the government, the government should start thinking of more efficient ways in helping those people. 

     

    Even though the Korean government is blockading  agricultural free trades, we are currently doubtful about how long this would last for. To achieve balanced development of our society, the government of Korea should raise its global negotiation power and make every efforts to protect our agricultural economy.

    In a nutshell, the government of Korea should be making more of constant efforts internally and externally to protect and vitalize Korea’s agriculture. Furthermore, the people devoted to the field of agriculture should show their best efforts in making agricultural economy more competitive to survive in the future.

     

    수완뉴스 경제팀 정종호 학생기자([email protected] )

     

    Read Korean News

     

    한국 농업 경제 부양을 위한 정부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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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정종호)한국 경제의 부흥은 “한강의 기적”의 산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한테 알려진 “한강의 기적”이란 1950년대 한국 전쟁의 폐해의 잿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일어나 2000년대의 경제 발전 국가가 된 놀라운 변화를 의미한다. “한강의 기적”에서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 IT 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산업들은 한국의 자유 무역 정책으로 인해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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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exels

     

    그러나 이러한 효과들은 농업 경제에는 미치지 않았다. 농업 분야는 경제 발전 계획 정책에서 소외되었고 그에 따라 국가 경제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또한 국가간 체결되는 자유 뮤역 협정들로 인해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농업 경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귀농을 장려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자유 무역 협정에서 농수산물을 민감한 품목들로 따로 분류하며 보호하는 등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세계의 3대 경제 국인 미국, 중국, EU 모두와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한 유일한 국가이다)

     

    정부는 농촌으로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정착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정부는 약 1억원에서 1억2천만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보조금만으로는 농업을 시작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약 2억원 정도가 농업을 시작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농업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적어도 8천만원을 조달해야 하는 것을 이미한다. 그러므로 농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자금의 투자가 들어가야 하고 그 투자를 보전하기 위해서 그에 상당하는 이윤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연간 약 2천만원의 이윤을 힘겹게 내고 있으며, 투자금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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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exels

     

    정부가 농업 경제의 부양을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안정된 귀농에 이르게 하기에는불완전한 절반의 교량 역할을 해주고 있고, 이는 생업으로 농업을 생각하는 잠정적인 농업인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정말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대해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농업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국내적인 노력에 더하여, 정부의 국외적인 노력들에 주목해 보자. 한국과 미국간 자유 무역 협정은 2012년에 체결되었다. 자유 무역 협정의 핵심은 국가간의 관세 없는 교역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농업 경제에 미칠 수 있는 폐해는 실로 막대하다. 왜냐하면 쌀과 기타 다른 농작물들이 한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큰 규모로 재배되고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은 미국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쌀보다 훨씬 더 싼 가격으로 품질 좋은 쌀을 팔아 많은 사람들이 미국 쌀을 소비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한국 농민들을 시장 밖으로 내모는 결과에 이르게 할 것이므로, 정부는 쌀과 쌀과 관련된 농작물들을 “매우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하고 관세 철폐가 이러한 품목들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조처했다.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통해 이러한 농작물들을 민감한 품목들로 따로 분류하도록 한 것은 농업 경제를 보호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 정부는 쌀과 쌀과 관련된 농작물과 같은 농업 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귀농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며 그에 따라 농업에 귀화하려는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정착 보조금 지원 이외에도 안정적 정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자유 무역 협정 체결 과정에서 아직은 농산물 분야의 관세 철폐를 방어하고 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는 없다.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정부는 농산물 분야의 보호를 위한 협상력 제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국가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농업 분야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지치지 않고 견고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사회적 정의 측면에서도 그렇게 함이 타당하다. 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의 큰 흐름 속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농업 분야를 언제까지 얼마만큼 보호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신기술 개발, 농업 경영의 선진화 등 농업 분야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 이다.

     

    수완뉴스 경제팀 정종호 학생기자([email protected] )

     

    영문 기사 읽기

     

    [비(非)제도권 청소년,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첫 번째 인터뷰 – 김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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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혜욤) 비(非)제도권 청소년 혹은 학교밖청소년이라 불리우는 청소년은 전국에서 매해 7만여 명, 서울에서만 1만 7천 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도권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데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이 이야기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패배자’, ‘낙오자’, ‘문제아’ 등의 낙인부터 찍습니다. 비(非)제도권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혜욤에서는 이들에 대한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밖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 굵은 글씨는 취재기자 박배민의 질문이고, 그 아래는 김상구 군의 답변입니다.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이름은 김상구이고 지금 19살, 글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 주제가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인데 상구 씨는 미진학을 한 경우죠?

    그렇죠.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진학하지 않으려고 했고, 결석처리로 정원 외 관리자가 됐어요.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미진학 하신 건가요?

    제가 선택했어요. 제가 학교를 안 다니고 싶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동의해주셨어요.

    마침 그때가 부모님이 해외로 영화를 촬영하시려고 하던 시기여서 더 좋은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죠.

     

    아까 글을 쓰고 계신다고 했는데,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고 있는 거죠?

    작가가 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저를 위해서 글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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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지망생 김상구  군, 사진 촬영 : 이채영)

     

     

     

     

    혹시 이 인터뷰에 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만 봐도 되게 다양한 형태로 살고 있잖아요. 이런 다양한 모습을 남들이 봐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너무 다른 사람들의 삶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거나 제 스스로가 한 선택이 아닌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안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전 부모님의 선택이 아닌 제 선택으로 학교를 안 다니는 거거든요. 제 아래로 여동생이 있는데 동생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거든요.

     

    아, 여동생이 있어요?

    네, 현재 중학교 1학년이에요.

     

    그러면 동생은 14살, 오빠는 19살이네요. 동생은 학교에 다니고 오빠는 안 다니는데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를 다닌 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피로했어요. 학교에서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긴 했지만 쉬고 싶고, 놀고 싶다는 생각에 항상 아쉬웠죠.

     

    그런 생각을 13살에 한 거예요? 부모님이 보시기엔 많이 어린데(13살) 그런 큰 결정을 반대하시진 않았어요?

    그런 건 없었지만 그 대신 너가 확신이 있다면 괜찮지만 제가 나중에 그 선택으로 인해서 힘들어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중학교 미진학 후에는 어떻게 지냈어요?

    책 읽고 부모님 작업현장에 따라다니고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 미래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지냈어요.

     

    미래에 대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거예요?

    처음엔 무엇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고 다만 준비를 했어요. 책 읽고 영화랑 만화를 보면서요.

     

    학교를 다니지 않은 초반에는 많이 놀았어요? 저(인터뷰어-박배민)는 자퇴하고 나서 초반에는 엄청 놀았거든요.

    놀기보다는 폐쇄적이었어요. 집에 자주 있었고 친구랑 노는 것도 없었고 주로 혼자서 생각에 많이 잠겼었죠.

     

    외롭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가끔 후회라든가?

    후회는 가끔 해요. 남들처럼 친구랑 놀러 다니고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 못 하니까.

    저는 친구가 있어도 공통 관심사가 적어서 자주 만나지도 못 하고…

    내가 비록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힘들 게 가는 것보다 다 정해져있지만 편안한 길을 가는 것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에요?

    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 한두 명 정도요.

     

    학교를 안 다닌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별 말 없었어요?

    ‘부럽다’고 하죠. 나도 학교 안 다니고 싶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학교를 안 다니는 게 처음엔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책임감이 생기니까 마냥 좋은 거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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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지망생 김상구  군, 사진 촬영 : 이채영)

     

     

    학교에서 독립된 생활한지 5년 정도 되었는데 그 동안은 어떤 일들을 했나요?

    학교를 막 그만뒀을 때는 막연하게나마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중에 부모님을 따라서 캄보디아에서 약 6개월 정도 지냈어요. 그곳의 삶은 제가 살던 삶과 완전히 달라서 그곳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죠.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길래요?

    우린 도시에 사는데 그 곳은 깊은 숲속에서 움막이나 나무로 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요. 문명하고 되게 떨어진 곳이에요. 텔레비전이 있긴 한데 채널도 별로 없고요. 빡빡한 도시와는 다르게 평원이라서 하늘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부족한 환경이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고요. 거기서 완전히 다른 생활을 경험하면서 지내다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럼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거예요?

    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주변에서 저보고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더 성숙해졌다고 하고.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이요. 지금도 쓰고 있죠. 주변에 구애를 받지 않고 조금은 사적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메시지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이야기로써 먼저 재미와 매력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아직 단행본이 나온 건 아니죠?

    네. 공모전도 몇 번 내봤는데 떨어졌어요. 아직은 저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책 읽고 글 쓰고 모임 나가는 게 많은 도움이 됐나요?

    네, 영감을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많은 걸 참고할 수 있고. 제가 느끼지 못한 부족한 점을 알수도 있구요.

     

    상구 씨는 외부활동을 정말 많이 하는 것 같던데 혹시 외부활동을 하면서 스스로가 비(非)제도권 청소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나요?

    그런 생각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 얽매이기 보다는 저한테 집중했어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하는가보단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과 그 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가에 조금 더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비(非)제도권 청소년이라서 차별 받은 적은 있어요?

    차별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죠.

    사촌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가 대학도 안 가고 검정고시도 안 본다고 하니.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걱정을 덜 하게 됐어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제가 논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하는 일들을 보고 마냥 생각 없이 노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아시니까요.

     

    그런 말(논다)에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어요?

    그런 적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생활이 짧은 것도 아니었고요.

    다시 생각해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대학 진학이나 취직에 대한 생각은 없고 진로는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하는 것에 충실하고 싶어요.

     

    19살에 진로가 확실한 건 대단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열어두지 않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영화나 시나리오 작가처럼 이야기를 다루는 쪽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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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지망생 김상구  군, 사진 촬영 : 이채영)

     

     

    팔레스타인도 다녀왔다고 했는데 외국에서 느낀 특별한 것들엔 뭐가 있나요?

    한국에 있을 때는 저하고 제 주변인들의 모습만 봤어요. 친구들은 다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내가 이 길로 가도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까 삶에 꼭 하나만의 길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삶의 방식이 이렇게 다양한데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해외에 다녀온 건 캄보디아랑 팔레스타인 이렇게 두 곳이 전부예요?

    길게 다녀온 건 그렇게 두 곳이요. 각각 3개월과 6개월씩 있었어요.

     

    중동 사람들의 생활은 상상이 잘 안 돼요. 텔레비전에서는 IS에 이야기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 곳의 삶은 어때요?

    일반적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많죠. 폭격도 있고 역사도 피로 얼룩진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역사를 보면 투쟁 속에서도 그 사람들은 살아가고 저항하고 불행한 일도 있지만 잘 이겨나가는 모습이 보여요. 마음도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지만 그 사람들은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그것들을 다 이겨내려고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저는 세상은 넓다고 느꼈어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자유라는 신념을 향해서 싸우고, 상처를 견뎌내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 당연히 많은 것을 배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 그 곳에서 사귄 친구가 있나요?

    제가 있던 곳에서 저랑 동갑인 친구들도 많았고 친하게 지냈지만, 제일 친했던 친구가 하나 있어요.

    서른 살의 택시기사였는데 나이는 저보다 형이지만 영어로 소통을 하다 보니 반말을 했어요. 우연히 그 형이 운전하는 택시에 타게 됐는데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졌어요. 그 후로는 계속 그 형이 운전하는 택시만 불러서 탔고 응원하는 축구팀도 같아서 경기도 같이 보고 그랬어요.

     

    그럼 위험한 지구가 따로 있어요?

    제가 있던 곳은 그나마 안전한 곳이었어요. 위험한 지구는 제가 있던 곳과는 멀리 떨어져있어요. 제가 있던 곳은 외국인들이 여행도 종종 오는 곳이었고요.

     

    상구 씨는 ‘멘탈’이 참 튼튼해 보여요.

    저도 물론 사람이니 깨질 때도 많아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나면서

    흔들렸던 제 불확실한 면들과 마음을 잡을 수 있었요. 힘들 때 용기도 얻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활하는 게 부모님 영향도 좀 큰 것 같아요.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저한테 구속이나 간섭도 없었고 중요한 건 네가 제일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물론 다른 부모님들 처럼 저를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크지만 일단 저를 많이 믿어주셨어요. 물론 가끔 제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요.

    저희 집 같은 경우는 절 믿긴 하지만 믿는다기보다는 약간의 방치가 있어요.

    예, 저희 부모님도 그런 게 있어요. 방치라고 볼 수 있긴 한데 십대까지는 돌봐주지만 이십대부터는 알아서 살라고 하셨거든요.

     

    그럼 내년부터 바로 독립해요?

    서울 시내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만 방이라도 얻을 예정이에요. 보증금 같은 건 지원해주시겠지만 내년부턴 성인이니 할 수 있는 알바도 많아질테니 그 외의 돈은 제가 벌어야죠.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요. (웃음)

     

    독립 이야기는 처음 들었네요. 이야기만 들어도 상구 씨를 향한 부모님의 믿음이나 사랑이 느껴져요.

    일부러 더 독립심을 길러주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도 좀 있어요. 확신이 있으면 하라는 입장이신데 저도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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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지망생 김상구  군, 사진 촬영 : 이채영)

      

    현재는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궁금해요. 모임도 많이 나가고 글도 많이 쓴다던데.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조금 멀리 산책을 나가죠.

     

    그렇게 지내면 하루가 꽉 차겠어요.

    그래서 이런 시간(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게 굉장히 소중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노는 것 같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좋아요. 그게 제 일과 관련된 거니까요. 책은 주로 나가서 읽어요. 독서실 같은 곳에서요. 읽은 책을 여러 사람과 같이 세미나나 책모임에서 이야기도 하고요.

     

    모임들이 어렵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배운다는 입장으로 가요. 어렵고 부족하지만 듣고, 배우는 자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릴 땐 폐쇄적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혜욤 식사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영화 찍는 걸 도와줬어요.

    많은 걸 한건 아니고 촬영할 때 장비 세팅을 도와주거나 슬레이트 쳐주고 장면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같이

    하거나 했죠.

     

    내년이면 독립을 할 거라고 했는데 향후 계획이 있어요?

    글에 더 확신을 가지게 만들고, 제 작품을 외부로 공개하는 거요. 완성된 단편이 5개 정도 있는데 지금 보면 좀 못마땅해요. 이 땐 부족했구나 하고 느껴요. 불과 몇 개월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쓰면 더 잘 쓰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감수도 하고 많이 보게 돼요.

     

    채찍질을 스스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늘 필요하지만 적당히 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과하면 우울해 질 수도 있으니까요.

     

    상구 씨의 생활이 되게 건강해 보이는데요?

    어느정도 노력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언제나 우울하지 않을 순 없죠. 저도 확실히 대학을 가거나 할 게 아니니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특히 학교밖 청소년 중에 글 쓰는 걸 희망하는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그런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아직 글을 쓰는 중이라 말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무엇보다도 많이 배우고,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자 하면 관련 학과를 나와야 인정해주는 분위기잖아요. 학력에 대한 유혹은 없었어요?

    실력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 분야는 학력보단 실력을 보니까요.

     

    옛날에는 글 쓰는 사람이 스타가 됐는데 요즘은 스타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별로 좋지 않은 책이 나와도 잘 팔리니까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안타깝기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죠.

     

    글을 쓸 때 독자를 배려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상구 씨의 주관을 밀고 나가는 편이에요?

    제 주관을 밀고 나가는 편이죠. 아직은 제가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다듬고 배워 가는 중이니까요.

     

    완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는데 본인이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잖아요. 볼수록 더 많은 게 보이고요.

     

    상구 씨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군가요?

    카프카요.

     

    왜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식의 충격적인 글이었고 나도 소설을 쓴다면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거든요.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어떤 이야기 보다도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변신’ 같은 작품만 봐도 환상적이지만 현대사회를 작가가 잘 드러내고 있어요. 소설을 저렇게 쓸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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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지망생 김상구  군, 사진 촬영 : 이채영)

     

     

     

     

    혹시 학교 밖 친구들이나 스스로에게 해줄 말이 있어요?

    많이 불안할 거예요. 불안하더라도 길을 선택한 것에 많이 용기를 내야죠.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까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스스로 찾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응원이나 조언이라기 보단 저도 많이 고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힘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약간 뻔뻔하게? (웃음)

     

    인터뷰는 여기까지 할게요.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수완뉴스 특별취재 2팀 혜욤 박배민, 이채영 기자([email protected])

    본  기사는 연작자의 요구로 인해 8월 11일에 1차 정정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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