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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9일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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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페이지 219

    역도 영웅 사재혁, 구속 위기, 자격정지 10년 선수 생활은 이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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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춘천]  역도 영웅이라 불리는 사재혁(31)선수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20일 강원 춘천경찰서는 “지난달 31일 오후 11시에 강원도 춘천시의 한 술집에서 후배인 황우만 선수(21)를 폭행해 얼굴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 전치 6주의 중상을 입힌 혐의로 사재혁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재혁선수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역도 77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바 있다.

    사재혁 선수의 구속여부는 빠르면  이번주내에 결정될 것이라 점쳐진다. 사 선수는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검사)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재판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을 시 국제대회 입상 등으로 받았던 연금자격이 박탈된다. 현재 사재혁 선수는 경기력향상연구연금을 받아왔으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는 연금 상한액인 월 100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재혁 선수는 황우만 선수와 그의 가족들을 찾아가 수차례 사과했으나, 황우만 측은 여전히 합의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번 구속영장을 신청한 배경에 대해 경찰은 황우만의 가족이 사재혁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힌바가 있다.

    경찰조서에서 황우만 선수는  “사씨가 자신을 불러낸후 대화도중 감정이 격해져 30분간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라고 진술했으며, 이에 대해  사재혁 선수는 “오해를 풀기 위해 황씨를 불렀다가 얘기도중 감정이 격해져 폭행한것으로 진술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 씨는 황 씨가 자신에게 맞았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는 이유로 감정이 격해진 것으로 전해진다.이 번 사건과 관련해 사재혁의 고향 홍천에서는 그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와 536명의 서명부를 춘천경찰서에 제출하는 등 사재혁 구명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앞서 대한역도연맹은 지난 4일 선수위원회를 열고 사재혁에게 ‘선수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내려 사실상 선수 인생을 끝내기도했다. 이에 대해 사재혁 선수는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

    [비(非)제도권 청소년,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5. 제빵사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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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혜욤) 비(非)제도권 청소년 혹은 학교밖청소년이라 불리우는 청소년은 전국에서 매해 7만여 명, 서울에서만 1만 7천 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도권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데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이 이야기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패배자’, ‘낙오자’, ‘문제아’ 등의 낙인부터 찍습니다. 비(非)제도권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혜욤에서는 이들에 대한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밖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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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을 만드는 소녀, 황지희 (사진 촬영 : 박배민)]

    ●본 인터뷰는 15년 11월 29일에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안녕하세요. 지희 씨. 수완뉴스 독자들을 대상으로 자기소개 한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 자퇴한 황지희, 19살이고요. 제빵사입니다.

     

    빵 관련 일을 하신다고 사전에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원래도 손쓰는 걸 좋아했었는데, 서점에서 만들기 책 같은걸 보다가 빵 관련 책을 보고 푹 빠져버려서 거의 12살때부터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많이 긴장하신 것 같은데, 더 앞으로 가서 자퇴 얘기부터 해볼까요?

    제가 고등학교를 특성화 고등학교로 갔는데, 거기도 조리과가 있었어요. 혼자 하거나 학원에서 하는 것보다 조리과에서 배우는 게 좀 더 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갔는데,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제가 입학할때 성적이 안되어서 자격증 특별전형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초반부터 선생님들께 눈도장을 찍혔는데 그게 좋은 의미도 있었지만 나쁜 의미도 많았어요. 그냥 저를 이용해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딱히 특별대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저를 완전히 보조 교사로 쓰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참다 참다 못 참아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게 되었어요.

     

    자퇴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년 넘었죠. 1년 반 정도? (15년 11월 기준)

     

    그럼 선생님들과의 관계 때문에 자퇴하게 된 건가요?

    선생님들과의 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굳이 ‘이 학교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자퇴하게 되었어요.)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수준이 떨어졌나요?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수준도 떨어졌고, 다른 학생들 보조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실습 시간에는 설거지 같은 거나 재료준비 같은 그런 것만 시키고…

     

    원래 준비를 학생들이 다 같이 하는 건가요?

    준비는 보통 과 부장들이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시간 때는 다 같이 하는 건데 그때 저는 (혼자) 빠져서 선생님 보조하거나 설거지 하거나 그런 식으로 (했어요.)

     

    선생님들이 지희 씨를 지목한 건가요?

    네.

     

    한 분의 선생님이? 아니면 여러 선생님이 그러셨나요?

    1학년 때는 아니었고 2학년 때 제과 제빵을 가르치셨던 선생님 한 분이 그러셨었죠

     

    제과제빵만 하는 과가 아니었군요?

    네. 학년별로 1학년 때는 한식만 배우고, 2학년 때는 양식이랑 제과제빵을 배우고 3학년 때는 일식과 중식을 배워요.

     

    그러면 1학년 때는 제과제빵이 아예 없었네요?

    네. 1학년 때는 (대신에) 카페디저트창업 동아리에 들어서 활동을 하면서 커피도 만들고 디저트도 만들고 그렇게만 했어요.

     

    그럼 2학년 올라와서 문제가 된 거네요?

    1학년 때는 어차피 (제과제빵) 과목 자체가 없으니까 애들도 도와주고 선생님도 도와드리고 그런 식으로 보냈는데, 2학년 때는 과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학년 때랑 똑같으니까 (문제가 되었죠.)

     

    그러면 수업에 참가를 못 했어요?

    참가는 했는데 거의 뒤편에서..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예요?

    제가 그 학교에 들어갔을 때 조리과가 1기였어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다 처음이시고 그래서 딱히 누가 어떻게 해도 제제를 가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것에 대해서 제가 이의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말은 ‘너를 특별대우 해줄 수 없다’는 말 밖에 안하시니까…

     

    ‘특별대우’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지희 씨한테 일 시키고 그런 건 오히려 안 좋은 대우 아닌가요?

    그 과 선생님이 저를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학생들을 도와주면 네가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될 거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제가 그래서 다른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 선생님이 ‘너를 특별대우 해줄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냥 그 상황을 잘 모르시고 (하신 말씀 같아요.) 저는 그냥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만 해 주시던가, 아니면 자격증 있는 학생들끼리 모아서 따로 수업을 해 주시던가 그렇게 말한 거였는데, 그게 특별대우 해달라는 것처럼 들렸나 봐요.

     

    자격증 있는 친구들이 (지희 씨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어요?

    특별전형으로 입학 한 학생은 저를 포함해서 2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저처럼 시키는 데로 다 하지는 않았어요.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제과제빵 수업하시는 선생님이 지희 씨를 오히려 좋아하셨다고요?

    네. 그냥 그 선생님의 애정표현이 그런 식이었던 거죠.

     

    동아리 선생님도 그 선생님이셨고, 과 선생님도 그 선생님이셨거든요.

    제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커피 자격증도 따두었는데, 그것 때문에 1학년 때부터 동아리에서 1, 2, 3학년을 다 가르치게 되는, 그런 상황까지도 갔었어요.

     

    커피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요?

    네. 1학년 때도 그렇게 했으니까 2학년 때도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왜 선생님들이 수업을 안 하고 학생이 하는 거예요?

    그냥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학생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부당한 대우 때문에 자퇴를 하게 된 거잖아요. 자퇴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어요.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불편해서 나중에 말씀드리고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처음 말씀을 드렸었는데, 선생님은 제가 이미 2학년 1학기 개학 하자마자 제 상태가 안 좋았대요. 자퇴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래도 졸업장은 따고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하겠다고 하고 나왔죠.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반응이셨어요?

    제과제빵 담당하던 선생님은 저를 붙잡고 우셨어요. 왜 그러냐고 그러시면서 그래도 좋은 아이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었냐고 말씀하시길래 제가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다른 학생들만 가르치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다고 그랬더니 이렇게 이기적인 애인지 몰랐다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말라고 (그러셨어요.)

     

    그 말 들었을 때 어땠어요?

    그냥 그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어서 그냥 ‘아 그러시구나’ (했어요.)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 때는 별로 화가 안 났어요. 이미 그 전에 너무 힘들어서 그 말을 들었을 땐 이미 해탈을 한 상태라서… 거의 일 년 반을 그렇게 대우를 받고 있던 상태니까.

     

    선생님이 시킨다고 해서 그걸 다 할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 때는 선생님들한테 잘 보이면 나중에 취업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그 선생님이 취업 관련 쪽으로 일하시던 분이라… 제가 좋은 소문이 나기도 했었어요. ‘지희가 일을 잘한다.’ 뭐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못 버티고 나갔죠.

     

    그 선생님이 취업을 담당하던 분이라 기분대로 행동하기도 힘들었겠네요. 지희 씨는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고.

    네. 그리고 학교 자체가 취업하는 학생만 도와주는 것도 있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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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줍음이 많은 지희 양. (사진 촬영 : 박배민)]

     

     

     

    자퇴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엄마는 알아서 하라고 하셨고, 아버지가 반대를 하셔서 아버지 설득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아버지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네 아버지는 많이 반대하셨어요. 오빠도 자퇴를 해서 무슨 집안 내력이냐고 (그러셨어요.)

     

    오빠랑은 몇 살 터울이에요?

    두 살 터울이요.

     

    오빠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거예요?

    네 오빠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했어요.

     

    지희 씨랑 비슷한 이유로?

    저랑은 다른 이유였죠. 오빠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그런 거였어요.

     

    그렇군요. 지희 씨 자퇴는 아버지가 얼마나 많이 반대 하셨어요?

    제 이야기를 잘 안 들으시려고 하셨죠. 계속 자리를 피하시려고 하셨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냥 아예 글로 써서 드렸어요. 그걸 읽으시고) 나중에 학교로 오셔서 학교 선생님이랑 몇 번 말씀 나누시더니 (자퇴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어떤 선생님과 얘기 하셨어요?

    저희 담임선생님이요.

     

    아까 그 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다고 했잖아요.

    네. 제가 유독 그 선생님을 불편해하긴 했었지만 그 분이 말 자체를 좀 상대방이 화가 나게끔 말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때 아버지도 선생님이랑 말씀 나누시고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막말하긴 싫은데 선생님 하실 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설득했던 기간이 어느 정도였어요?

    일주일 정도요.

     

    많이 길지는 않았네요.

    네. 아버지가 딸들을 좋아하셔서요. (웃음)

     

    가족 관계가 어떻게 돼요?

    제 위에 오빠가 있고, 여동생 있고, 엄마, 아버지(가 계세요.)

     

    아까 편지를 썼다고 했잖아요. 그 편지가 아버지께 통했나요?

    네. 아무래도 제가 막 감정에 북받쳐서 이야기를 하면 결국 감정싸움 밖에 안 되니까 (제 생각을) 딱 적어서 드리니까 나름 도움은 되었어요.

     

    (편지를 본)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어요?

    정 그러면 한번 가서 (선생님한테) 말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 편지 때문에 (아버지가) 학교에 가시게 된 거예요?

    네. 그 전까지는 (학교에 가실) 생각도 없으셨는데 (가시게 되었어요.)

     

    집안에서 자퇴에 대해 반대가 있긴 했지만, 엄청 큰 반대는 아니었네요?

    네. 원래도 어렸을 때부터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많이 존중해 주셨거든요

     

    많이 존중 받는 편이었군요.

    네. 원래도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이미 그 쪽으로는 진작 포기하신 것 같아요.

     

    자퇴 선배인 오빠는 (자퇴할 때) 어떤 반응 이였어요?

    학교를 나왔으니까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니라고, 한 곳에 있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이 없으니까 돌아다니는 게 가장 좋다고 (했어요.)

     

    자퇴 하고 바로 다음날 뭐 했어요?

    저는 숙려제(학업을 중단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는 경우 학교에서는 전문상담기관의 상담이나 진로 탐색 프로그램 등을 안내하거나 제공하여 학업 중단에 대하여 숙려할 기회를 주는 제도) 할 때부터 학교를 안 갔어요. 자퇴를 하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린 다음부터 드문드문하게 학교를 갔어요.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이 저 때문에 이번 달 학급 개근상을 못 탄다고 뭐라 하셨어요. 학생이 자퇴를 하겠다는데 그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죠. 그 다음날엔 빨리 오라고 하셔서 그 다음날부터 아예 학교를 안 갔어요.

     

    반 전체가 다 나와야 개근상을 타는 그런 게 있었어요?

    네. 그냥 뭐 생활기록부에 하나라도 쓰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그걸 받는다고 해서 진학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거였죠.

     

    학교는 어땠어요?

    중학교 때보다 못한 느낌이었어요. 학생들이 너무 자기들 생각만 하고 점수가 없으면 딱히 일하려고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그냥 녹아드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고 그 분위기에만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정도?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 중에 연락하는 사람 있어요?

    한 명 있어요.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땐 별로 안 친했는데, 자퇴를 한 다음에 친해진 친구거든요.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엔 친한 친구가 없는데, 같은 중학교를 나와서 같은 고등학교에 간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보려고 학교에 갔었는데, 그 때마다 걔도 같이 보였어요. 그래서 간간히 인사하고 얘기도 하다보니까 말이 통해서 그 다음부터 친해졌어요.

     

    지금도 만나요?

    네 지금도 만나요.

     

    그 친구도 제과제빵을 해요?

    네. 그 친구는 지금 강남 쪽에서 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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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년 겨울, 지희 양은 1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 촬영 : 박배민)]

     

     

     

    숙려제는 어땠어요?

    상담도 하고, 무슨 체험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거 하면 숙려제 반을 빼주시겠다고 하셔서 그 때 그거 했어요.

     

    숙려제는 어디서 했어요?

    인천에 석바위시장 쪽에 ‘두드림 해밀(2015년 여름부터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이란 이름으로 통합)’이라는 곳에서 했어요.

     

    (숙려제)선생님은 어땠어요?

    괜찮은 분이셨어요.

     

    자퇴하고 나서는 뭘 하려고 했어요?

    제과제빵 학원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그게 맘처럼 바로 가지지도 않고 해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도와 드렸어요.

     

    학원에 도와주러 간 거예요?

    학원에서도 도와드리고, 선생님께서 재활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하셨는데 거기서도 일을 도와드렸어요.

     

    돈을 받고 한 거예요?

    아니요. 딱히 받지는 않고, 같이 점심 먹는 정도였어요. 자주 간 것도 아니고 그 선생님이랑 워낙 오래 본 사이라서 그냥 경험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제과제빵) 일을 하게 된 건 언제예요?

    자퇴를 작년 7월(14년)에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작년 11월(14년)이에요.

     

    3개월 정도는 쉬었네요?

    네 거의. 한 달은 아예 쉬고, 나머지 두 달은 알바를 했었죠. 한 달 동안 쉴 때는 거의 정신줄을 놓고 있었어요. 제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자다 일어나면 오후 1시고.

     

    계획이 이루어진 게 없다고 했는데, 어떤 걸 계획 했었어요?

    선생님 보조로 일을 계속 나가려고 했는데,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계속 (제가) 필요한 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절 부르시는 것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가 다니까… 공부도 좀 하려고 영어 학원을 다녔었는데, 그 때만 잠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놀고 있으니까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죠.

     

    3개월 동안 심적으로 힘들진 않았어요?

    그 3개월 동안은 엄청 우울했어요. 내가 왜 (학교를) 나온 건가 싶기도 하고, 제과제빵 쪽이 워낙 직장으로 구하기도 힘든 데다 어린 학생들은 잘 안 뽑아서.. 그 때 뭐라도 하려고 운동을 다녔었는데 그거라도 한 게 엄청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 혼자 있었어요?

    네. 방문 닫고 핸드폰만 했어요. 부모님은 일 나가시고 동생도 나가고… 또 괜히 동생이 집에 친구 데리고 오면 괜히 화내고 그랬어요.

     

    동생이랑은 몇 살 터울이에요?

    다섯 살이요. 중학생인데 생일이 빨라서 2학년이에요.

     

    힘든 3개월을 어떻게 이겨냈어요?

    운동하고, 알바하고 그냥… ‘내가 살아만 있구나’ 하는 식으로 보냈어요.

     

    첫 직장에는 어떻게 취직하게 되었어요?

    그곳이 조금 큰 곳이었는데, 1년에 한 번씩 학습근로자를 뽑았어요. 그래서 아예 만 18세 학생들 위주로 뽑았었는데, 솔직히 제가 작년에는 만 17세였잖아요. 나이가 안 되는 건 알았는데, 그래도 한번 넣어보자는 취지로 (서류를) 넣었어요. 최대한 이것 저것 꾸며서 넣으려고 카페 알바 하던 곳 매니저님께 자기소개서 좀 꾸며달라고 부탁해서 넣었는데 붙은 거예요. 자격증이 있다고 말했던 게 도움이 컸던 건지, 그 때 붙어서 11월 때부터 일을 시작했죠.

     

    일하는 건 어땠어요?

    다른 곳은 그냥 일반 빵집처럼 빵집 옆에 공장이 있고 아니면 빵집 안에 사람들이 바로 볼 수 있게 윈도우 베이커리로 되어 있는데, 제가 간 곳은 공장이 좀 커서 다른 곳에서 (많이) 못 만드는 걸 만들어서 보내는 곳이었어요. 그러니까 케잌을 만들 때 생크림을 샌드하고 데코해서 만들잖아요. 그게 아이싱인데, (그 공장에서는) 그 전인 상품을 보내는 거예요. 기본적인 빵만 보내거나 공정이 간단해서 대량으로 뽑을 수 있는 그런 상품들을 주로 만들었죠

     

    직원이 몇 명이었어요?

    그 곳이 쿠키실, 케잌실, 빵실 다 나눠져 있었는데 제가 일했던 쿠키실에만 20명이 있었어요. 또, 그 실마다 과장님 차장님 다 계시고 부장님도 계시고…

     

    그런 곳에서 일하려면 힘들지 않아요?

    초반에는 저희가 아무래도 직원이 아닌 학습근로자다 보니까 오빠들이나 거기서 같이 일하던 이모님들도 그냥 간단한 일만 시키고 퇴근시간 되면 가라고 (하셨어요.) 근데 이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해봤자 일이 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일부러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야근을 한다고 했어요. 근데 그 때가 크리스마스 전 달이라 기본 11시, 12시에 끝나던 때였거든요. 제가 그 때까지 남아있으니까 그제야 다 같이 두루두루 친해지고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제대로 된 일을 주던가요?

    네. 아무래도 좀 하려는 게 보이고 그러니까 학습근로자한테는 잘 안시키고 직원들만 하는 일 그런것도 많이 시켜주셨어요

     

    그러고 나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저는 보통 롤케잌 만드는 일이랑, 오빠들 보조랑, 파이 잘라서 만드는 일을 했어요. 이것 저것 많이 했어요.

     

    제과제빵을 업으로 하는 것과, 학원에서 배우는 것의 차이가 많이 있었나요?

    차이가 엄청 심해요. 학원에서는 책이나 선생님이 적어주시는 레시피가 있어서 그것에 맞춰서 그대로 하면 되지만 진짜 ‘업’으로 삼으면 이걸 다 느낌으로 알아야 해요. 보고 알아야 하고, 만져서 알아야 하고… 몸으로 느끼는 게 중요해서… 또 워낙에 세세한 공정 같은 건 빼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뺐던 공정을 넣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거의 정반대라고 봐야 해요.

     

    적응하는 게 힘들었겠어요.

    네 그래서 약간 정신없었죠. 그래도 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니까.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무래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거기서 언제까지 일했어요?

    거기선 두 달밖에 일 못했어요. 나오기 직전에 약간의 트러블도 있었고… 아무래도 너무 친해지다 보니까 트러블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12월이 되니까 검정고시를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돼서… 제가 일하던 곳이 성남인데, 검정고시를 성남에서 일하면서 준비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어요.)

     

    집이 인천 쪽이었죠?

    네. 성남에서 일할 땐 기숙사에서 생활했어요.

     

    일을 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네. 일을 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제가 나온 다음에 그곳에 일적으로 문제가 생기긴 했어요. 제가 검정고시를 보고 다시 그 직장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던 분들이 다들 그만두신다고 하셔서 돌아가진 않았어요.

     

    이건 진짜 말하고 싶은 건데, 학생들이 빵 쪽에 꿈을 갖고 하려고 하는데, 진짜 환상을 깨야 해요. 멋있는 직업도 아니고, 오히려 빵쪽 업계가 워낙 작아서 비리도 많고, 더럽기도 엄청 더럽고, 업계가 작으니까 소문도 잘나요.

     

    보통 빵집이 근로계약서를 써주면 진짜 좋은 곳이에요. 원래는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건데, 안 해주는 곳이 거의 80프로 정도 돼요. 4대 보험도 잘 안 해줘요. 차라리 프랜차이즈 쪽이 나아요. 사람들이 파리XXX에 가면 못 나오는 이유가 그거예요. 대우도 좋고, 보수도 좋아서… 하지만 그런 점들이 있어도 일을 배우기에는 일반 빵집이 좋아요…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첫 직장에서 나왔던 때가 12월(14년)이에요?

    네. 12월 다 끝나갈 쯤 크리스마스 넘기고 나왔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겪고 나왔으니까 좋은 거죠. 빵 일 하면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보는 게 ‘크리스마스를 겪었는지‘예요. 크리스마스 때가 워낙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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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황지희 양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진 촬영 : 박배민)

     

     

     

    올해(15년)는 어떻게 지냈어요?

    올해는 2월 달에 잠깐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었어요. 근데 저는 어차피 졸업증만 따면 되니까 굳이 학원을 안 다녀도 충분히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원래 두달 과정을 끊었던 걸 한 달하고 생각이 바뀌어서 남은 달은 안나가고 안 나간 학원비를 엄마한테 드렸어요.

     

    검정고시 봤어요?

    네. 검정고시 합격하고. 근데 검정고시 보기 전 3월 달에 이미 일을 구했었어요. 그래서 3월부터 8월(15년)까지 일했죠.

     

    8월까지 일하고, 지금은 쉬고 있는 거예요?

    지금은 일주일 정도 쉬고 있어요.

     

    두 번째 직장에서는 많이 못 하고 금방 나왔네요?

    네. 거기가 제가 말했던 더러운 곳이에요. (위생적으로) 엄청 더러워요. 참다 참다 나왔어요. 일하면서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많이 더러웠죠.

     

    그 곳도 큰 곳이에요?

    아니요. 거기는 일반 개인 빵집이에요. 그곳이 오픈 베이커리가 아니라 공장이 따로 있는 곳이라서, 손님들은 이곳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못 보잖아요. 그래서 진짜 겁나 더러웠어요. 위생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일이 가능해요?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들은 잘 참더라고요. 여자들은 못 참는데 거기 일하던 분들이 다 남자였는데, 다 잘 참고 저보고 ‘다른 데 가면 여기보다 더 더러운 곳 많다’ 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여태 일을 3곳에서 해 봤는데, 아직까지 이곳만큼 더러운 곳을 못 봤어요.

     

    봄, 가을, 겨울에는 좀 괜찮아요. 근데 여름에는 음식도 잘 썩고 하니까 빵도 잘 상해요. 바퀴벌레들이 밀가루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오면 문 열자마자 바퀴벌레 한 두 마리씩 보이고.. 제가 반죽을 쳤었는데, 반죽 통을 열면 안에 바퀴벌레 있고, 버터에 빠져있고 그래서 진짜 보다 못해 나왔어요. 그 동네가 주택가였는데, 다 애들이 먹는 거잖아요. 그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장님도 그런 사실을 알아요?

    부장님이 쉬쉬 하시죠. 제가 직접 사장님께 말씀 드렸는데, 그랬다가(사장님한테 얘기했다가) 부장님께 혼났죠. 왜 논의 없이 사장님께 바로 말씀 드리냐고. 그런데 뭐 이미 아시는 분인데도 신경을 안 쓰시는데… 사장님께서도 약 뿌리는 업체를 한 번 더 부를 테니까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근데 약만 뿌리고 그냥 가니까.. 결국은 (있던) 바퀴벌레들이 죽고, 도망갔던 애들은 다시 나와요. 그러면 진짜 어마무시하게 많아요. 못 걸어 다닐 만큼.

     

    첫 번째 직장에서는 위생 관리를 어떻게 했었어요?

    거기는 워낙 엄청 깨끗했어요. 들어가는 문이랑 나오는 문이 달랐어요. 들어가는 문에서 아예 소독을 하고 들어갔어요. 그게 제가 시작이 안 좋았던 거죠. 빵 일을 시작하려면 작은 곳에 있다가 큰 곳으로 가야 하는데, 큰 곳에 있다가 작은 곳으로 오니까 눈이 높아져서 당연히 (첫 직장만큼) 깨끗할 줄 알았는데 완전 최악이니까.

     

    이번에 새로 구한 곳은 어디에요?

    거기는 생긴 지도 얼마 안 돼서 깨끗할 것 같아요.

     

    거기는 어떻게 구했어요?

    거기는 사람X에서 이력서 넣어서… (구했어요)

     

    그런 건 어디서 찾아요?

    아예 파티쉐만 구하는 사이트가 따로 있긴 한데, 그런 사이트는 저 같이 경력 없는 사람들은 힘들어요. 그냥 잡코리X나 알바XX 같은 곳에서 찾아요.

     

    이제 경력이 1년 넘어가는데, 슬럼프가 왔던 적은 없나요?

    이번에 왔어요. 제가 일을 11월부터 12월까지(14년) 한 번 했었고, 3월부터 8월까지(15년) 한 번 했었고, 또 9월부터 11월까지(15년) 있었어요. 근데 9월부터 11월까지는 되게 좋았어요. 사장님은 안 좋았지만 직원들은 되게 좋았는데, 경영악화로 문을 닫게 되어서 나올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사장님께서 가게가 망하기 이틀 전에 알려줬어요. 인건비도 아까워 하시던 분이라 직원들은 끝까지 부려먹고.

     

    이번엔 오래된 빵집에 사람을 구하길래 갔었어요. 수요일, 목요일 일을 했었는데 거기가 인격 모독이 심했어요. 사람을 되게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했어요. 처음 출근 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뽑아도 너보다는 나을 거다.’ 라는 얘기도 하고, ‘빵 되게 허투루 배웠구나.’ 라고도 하고, 막 제가 소심해서 인사를 먼저 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목소리가 작아서 인사를 해도 못 들으시는 경우가 대다수라 눈이 안 마주치면 인사를 잘 안하거든요. 그래서 첫날부터 찍힌 거예요. 그랬더니 ‘인성이 못 되먹었다.’ , ‘너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니?’ 라는 식으로도 얘기해서… 겨우 겨우 참고 둘째 날 나갔는데 ‘빵 시장 통에서 배웠냐.’고 하셔서 못한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나왔어요.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내가 너무 빵을 쉽게 하려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마음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출근하는 곳에서도 만약에 제가 힘들고 그러면 잠깐의 생각을 가져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시작은 남들보다 빨랐을 지 모르지만 제가 원한 게 아니더라도 일을 자주 옮겨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아직은 어려서 일하면서 듣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솔직히 일을 자주 옮기지 말고 한 곳에서 1년이라도 채웠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과제빵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8년 동안 슬럼프는 처음이에요?

    공부가 필요하다는 건 예전에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빵 쪽이 식품학이랑 영양학에 관련이 많아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돼요. 근데 아직은 굳이 그 정도까지 파고 들고 싶지 않아서 일만 배우면서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친화력도 길러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좀 강한 마음은 못 가졌으니까요.

     

    너무 일에만 매달린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을 자주 듣긴 해요. 알바를 16살 때 처음 했었는데, 그 때 이후로는 3개월 이상 쉬어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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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일을 3개월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사진 촬영 : 박배민)]

     

     

     

     

    왜 그렇게 일에 매진해요?

    돈 문제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워낙 손 벌리는 걸 싫어해서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보니까.

     

    집안 경제사정이 힘든 편이에요?

    힘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자신의 것을 혼자 짊어지는 게 맞지만, 준비 단계도 없이 혼자 과한 짐을 짊어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자주 듣긴 해요. 이번에도 이틀 전에 갔던 직장에서 나오고, 그 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저보고 ‘나는 19살에 컴퓨터하고 게임하고 놀았는데, 너는 왜 그러냐.’ 그런 얘길 많이 들었어요.

     

    그 정도로 막 놀진 않아도, 적당한 여유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하긴 한데, 왠지 아직은 못 멈추겠어요.

     

    지희 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요.

    진짜 가정환경이 안 좋지 않은 이상 일을 빨리 시작하는 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한 번 잡으면 놓지를 못해서. 그냥 쉬엄쉬엄 하는 거면 괜찮은데.

     

    인터뷰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빵쪽 일을 하시려거든 마음을 강하게 먹으세요~!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전 이 쪽 일이 꽤 잘 맞아요. 힘들어도 잘 참아볼게요.

     

    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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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혜욤) 비(非)제도권 청소년 혹은 학교밖청소년이라 불리우는 청소년은 전국에서 매해 7만여 명, 서울에서만 1만 7천 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도권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데는

    #2 한양의 으뜸 궁궐,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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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서울-로고

    안녕하세요?

    ‘고궁여행’이라는 테마를 진행하면서 첫 편을 덕수궁을 가봤는데요,

    이번 화에서는 한국 최대의 목조건축물인 경복궁을 가봤습니다.

     

    첫 편에 말씀드렸다싶이 서울탐방이긴하지만, 구석구석 역사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그런것보단

    조선시대의 느낌을 살려 고유의 예쁜 경치를 담아내고 소개하는것이기에

    조금 부족한것 같아도 조선시대의 향기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경복궁은 규모가 커서 2편으로 나눠서 제작 될 예정이에요!

    1편에는 경복궁 전반적인 앞쪽 풍경, 2편에는 경복궁 뒤쪽을 보여드릴거에요!

     

    경복궁은 광화문 광장에서 쭉 걸어가다보면 볼 수있는데요!

    관람정보에는 지하철 경복궁역(3호선) 5번 출구 혹은 광화문역(5호선) 2번 출구라고 나와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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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광화문역 9번출구에서 앞으로 쭉 걸어나오시거나 버스로 오신다면 세종문화회관에서 하차하시는게 편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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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은 다른 궁들에 비해 엄청 붐비는 편이랍니다.

    아마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커서 그런거겠죠? 저는 일부러 사람이 없을 것같은 시간대로 갔는데도 관광객들이 엄청 많아서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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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은 입구에서 그냥 들어갈 수 있어요! 바로 사진에서 보이시는 여기까지는 그냥 자유롭게 들어오실 수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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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냥 들어가실 수 있는 저곳은 수문장 교대의식만 볼 수 있는 그저 텅 빈 공간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관람하시려면 당연히 티켓을 끊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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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 덕수궁과 마찬가지로 만 24세이하, 만 65세 이상은 무료고 만 25세~64세 성인분들은 3000원입니다!

    당연히 증빙할 수 있는것이 필요합니다. 학생은 무료입장이라 학생증을 보여주고 입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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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은 관람해보니 덕수궁과는 다르게 궁들로 동그랗게 돼있어서 사진 한장한장 찍는것보단 파노라마로 찍는것이 훨씬 생생하게 나오더라구요!

    화질이 조금 안좋아지는게 문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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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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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도 옆쪽으로 ㄷ자 형태로 둘러쌓여있는 형태에요!

     

    panorama10이렇게요!

    사실 들어가도 한 2~3번 정도 이런 구조로 되어있길래 경복궁이 생각보다 볼 게 없다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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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전광판 있는 곳에서 경복궁 안내표지를 가지고 가실 수 있으세요!

     

    전 덕수궁처럼 입구쪽에 없어서 없는 줄알고 그냥 돌아다니다가 길잃어버리고 나올 때 쯤에나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가실 때 유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멍청하게 그냥 돌아다니지마시고 꼭 안내표지 가지고 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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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문이 종종 보이던데 막아둬서 궁금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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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조선시대 땐 물이 흐르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흐르지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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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소 옆에 있는 문인데 창고 같네요! 조선시대 느낌이 물씬 나길래 한번 찍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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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궁궐안에서 가장 중심건물인 근정전을 들어가기 전에 있는 곳이에요.

    여기를 거치고 근정문을 지나가야 근정전을 볼 수있는데 화려한 건물이 없어 은근히 심심했는데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여기서 은근히 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라구요!

    크고 장엄한 건물보단 이런 곳들이 훨씬 사진이 잘 나오는 것같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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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뒤에 근정전 보이시나요? 근정전에 관광객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근정전 사진은 못찍었지만

    실제로보면 엄청 크고 장엄하답니다! 괜히 궐안의 중심건물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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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엔 되게 없는 것같지만 저 뒤쪽까지 중국, 일본 관광객분들이 사진 찍으시느라 엄청 붐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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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노라마로 찍어봤습니다! 역시 옆에 ㄷ자로 둘러쌓여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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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되게 없는 것같지만 엄청 많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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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정전 오른쪽으로보면 저기 문이 있어요! 문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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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저 문으로 나가 둘러보고 난 뒤 다시 근정전으로 돌아와서 앞으로 갈 생각이었으나..

    제가 길을 잃은 원인이 되어버렸죠. 근데 궁궐이라서 그런지 근정전에서 앞으로 안가도 저기로도 갈 수 있더라고요!

    건물들이 이어져있어서 그런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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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레는 마음으로 두근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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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이 쪽 문으로는 잘 안오시더라구요! 다른 곳은 매우 붐볐는데 이 문쪽은 나름 한산한 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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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왼쪽으로 가봤습니다 주차장 쪽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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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에 찍어봤어요. 너무 예쁘지 않나요?ㅎㅎ

    알록달록한게 날씨좋은날에 한복입고 와서 사진찍으면 정말 잘 나올 것같아요.

    (참고로 입장료 내시는 성인분들 한복입고오시면 무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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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로 들어가봤어요! 옆쪽에 길이 하나 더 있는데 어차피 여기로 들어가도 그 쪽으로 갈 수있으니깐 가장 가까운 문으로 가봤어요.

    panorama18이렇게요!  문옆에 길 하나 더 나오는거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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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정말 이쁘지않나요? 경복궁 찍으면서 정말 아쉬운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것이 훨씬 이쁜데

    다른 사진 전문가분들이 찍은 사진들을 봐도 실물을 못따라가더라고요.. 경복궁은 실물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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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여기부터 길 잃어버리기 시작했지만 그냥 감대로 가기로..ㅎㅎ

    어차피 저에겐 경치가 제일 중요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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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쪽문이 있는데 이런 쪽문이 되게 많았어요!

    저기 밖은 아마 근정전 쪽 인것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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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문이 나와서 들어가봤습니다..

    여기서부터 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갈래는 너무 많아서 살짝 멘붕왔지만 저에겐 중요하지 않으니까 무시하고 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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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거기서 거기인것 같아도 벽, 문 하나하나 다 이뻐요….

    카메라가 비루해서 색감을 제대로 못잡는게 원통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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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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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여기서부터 길을 완전히 잃어서 당황하면서 이리저리 지나다녔지만,

    이쪽에만 사람이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가고싶은 대로 가기로 결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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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 한옥마을이 생각나는 곳이었어요!

    골목마다 기와집들이 붙어있는게 가정집 붙어있는 것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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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밖으로 나가면 국립민속박물관이 나온답니다.

    철창으로 못 들어가게해놔서 가시려면 밖으로나가셔서 경복궁 돌담길따라 좀 걸으셔야해요!

    제 기억엔 삼청동, 소격동 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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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이쪽부터 길을 완전히 잃은걸로 기억해요..ㅋㅋ

    나중에 지도로 찾아보니 이렇게 복잡하게 골목골목 있는게 소주방, 생물방, 내소주방, 외소주방, 자선당, 비현각이 모여있는곳에서

    제가 이쪽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더라고요 여기만 빙글빙글 도느라 두시간은 썼네요..ㅠㅠ

    다들 꼭 안내표지 가지고 가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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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으로들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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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이 나왔어요. 안에 건물들이 다 안 못보게 막혀있어서 다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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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다보니 어느 문으로 들어갔는데 길을 잃어가지고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

    소주방 쪽에 문이 많은데 아마 거기 중 하나였겠죠?

    panorama30아무튼 한복입는 분들도 보이네요!

    경복궁안에 한복입고 오시는분들 매우매우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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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나와서 해매다보니 탁 트인 곳이 나오네요!

    아마 오른쪽에 보이시는곳이 자경전으로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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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중국인 관광객들 계시길래 이때부터 좀 따라갔습니다…

    계속 혼자다니니까 너무 길을 헤메서요.

     

    근정전에 계시던 사람들이 바로 오셔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나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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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해매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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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아까 봤던 그곳 뒤편으로 왔습니다!

    계속 같은 장소가 나와서 이때부터 미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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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쪽 문에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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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저찌 계속 사람들 가는곳 따라 걸으니까 이렇게 예쁜 골목도 나왔네요.

    사진엔 없지만 해매다가 이 골목 다시왔을때 한복피팅모델 촬영도 하시더라고요!

    사진찍으면 너무너무 예쁘게 나오는 장소일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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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도 닫혀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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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10시에 왔고 경복궁 뒷쪽은 가보지도 못했는데 길헤메다보니 벌써 1시가 돼서 해가 쨍쨍하게 떳네요..

    다시 한번 부탁하지만 꼭 안내표지 가지고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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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흐려서 햇빛비추는곳이 별로 없었는데 문에 저렇게 돼 있네요. 이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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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자마자 나왔어요.

    문앞에선 없어보이지만 들어가자마자 저 앞쪽에 관광오신분들이 엄청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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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밖은 한산했어요. 낮잠자기 좋은 경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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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아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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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무식하게 지도도 없이 걸어다닌탓에 순서도 뒤죽박죽 가는것도 제 멋대로였지만 경복궁의 그 느낌은 잘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2편에선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경회루와 경복궁 뒤쪽 항원정 부근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경복궁 2편에서 보겠습니다!

     

    -백지우 칼럼니스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마리텔’ 정준하 물풍선에 가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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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서울] 작년 11월 22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생방송에 출연한 방송인 정준하에 대한 마리텔의 제작진과 일부 출연진들의 행위에 대해 가학적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에 대해 방심위는 가학적이다는 판단을 내려, ‘권고’조치를 했다고 지난 15일에 밝혔다.

    이 방송에서 방송인 정준하씨는 이마에 압정 머리띠를 착용하여 시청자들이 채팅창으로 보낸 물풍선을 맞으며 ‘먹방’하는 내용을 방송한 마리텔에 대해 방심위가 가학적 묘사를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를 조치를 취했다.

    방심위는 13일 오후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를 열고 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 결과 △라면, 고기를 먹으며 수차례 물풍선을 맞는 장면 △다른 방송에 출연 중이던 야구선수 유희관이 던진 물풍선을 맞는 장면 △제작진과의 꼬막 먹기 게임에서 진 후 물풍선을 맞는 장면 등 지나치게 가학적인 내용을 방송했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제5호, 제36조의2(가학적·피학적 묘사)를 이유로 전원 ‘권고’를 결정했다.

    미리 본인이 준비한 아이템에 대해 전반전에 대해 네티즌들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고, 소고기 먹방으로 문을 연 후반전에서 김구라의 게스트로 온 야구선수 유희관과 김정민이 정준하의 방을 방문하면서 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정준하는 이들에게 재미가 없으면 자신에게 물풍선을 던지라고 말하면서, 유희관에서 물풍선을 건넸고 유희관은 이를 받아 던졌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문제가 없지만, 정준하의 방을 떠나려던 유희관이 정준하의 얼굴에 갑자기 물풍선을 던지면서 정준하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기도 했다. 우동, 새우를 먹은 정준하는 정해진 시간 내에 꼬막을 다 먹지 못해 제작진들로부터 물풍선 세례를 받기도 했으며, 정준하는 방송 중 의자를 돌려앉으면서 카메라를 피해 감정을 추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을 가학적이다 라는 논란이 거세게 일은 바 있다.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왕의 선물–사여품’ 특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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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왕의 선물포스터, 사진제공 서울시
    백제왕의 선물포스터, 사진제공 서울시
    백제왕의 선물포스터, 사진제공 서울시

     

    [수완뉴스=서울]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은 기획전시실에서 겨울특별전 “백제왕의 선물-사여품”을 2월 28일(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회는 초·중등학생들의 겨울방학을 맞아 그동안의 백제사 연구 성과를 시민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정리한 특별전시회이다.

    “백제왕의 선물-사여품” 특별전시회는 백제왕이 하사한 선물인 금동관모·장식큰칼 등 190여점의 유물과 백제 지배방식과 사여체제에 대한 학술적인 성과를 전시한다. 시민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영상, 모형, 체험물 등으로 전시한다.

    전시실 모습, 사진 제공 : 서울시
    전시실 모습, 사진 제공 : 서울시

     

    서울시는 백제 초기 5백년 왕도였지만, 지금까지 서울지역에서 출토된 백제유물 수십만점 가운데 금공예품이나 위세품은 수량이 매우 적다. 그에 반해 지방 각지에서는 금동관모를 비롯하여 금동신발, 장식큰칼, 수입도자기 등 상당히 많은 양의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학계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이러한 유물이 출토된 무덤의 주인은 백제왕과 특수한 관계를 맺은 지방의 유력자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하남위례성(서울)에서 건국되었으며 기원후 475년에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493년간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삼았는데, 나중에 왕도이름을 위례성에서 한성으로 바꾸었으므로 역사학계에서는 493년간의 역사를 한성도읍기 또는 한성백제시기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는 한성백제박물관이 2014년 4월 30일 개최한 쟁점백제사 학술회의 「백제의 왕권은 어떻게 강화되었나–한성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토론 결과를 반영했다. 전시는 연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중심으로 백제의 최대영역과 지방통치방식, 중앙집권화 과정 등에 초점을 맞췄다. 백제의 영역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기록 및 유적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한때 북쪽의 대동강유역, 동쪽의 춘천․화천지역, 남쪽의 금강유역을 기준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남해안까지 남쪽영역을 넓혔다는 점을 전시에 반영하였다. 백제가 영역내의 지방세력을 흡수․통제하는 과정에 백제왕이 금동관모, 금동신발, 귀걸이, 허리띠, 장식큰칼 등 백제 특유의 금공예품을 중국산 도자기와 함께 지방 유력자들에게 내려주었으며, 이런 유물들이 경기 화성, 충남 천안․서산․공주, 전북 익산․고창, 전남 나주․고흥 등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 백제의 훌륭한 금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위세품 중 금동관모는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문양은 용, 육각형, 두잎·세잎무늬, 봉황, 새, 연꽃, 물결, 불꽃, 비늘 등 다양한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문양들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한다.

    백제왕은 한성도읍기에 동진·북위·왜·신라·가야 등 주변 여러 나라에 선물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지방의 유력자들에게도 선물을 보냈다. 모두 정치적 의미가 크지만, 특히 지방유력자들에게 준 선물은 백제의 지방지배방식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백제왕은 선물을 통해 중앙의 권위와 종속관계를 나타내려 하였고, 지방의 유력자들은 그 선물을 통해 자신의 위신을 높이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백제왕의 선물은 일본열도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일본 나라현奈良縣 텐리시天理市의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된 칠지도七支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칠지도의 현재 모습을 복제한 칠지도뿐 아니라 원래 모습을 상상하여 복원한 칠지도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2기 학생기자 최종합격자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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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의 2기 학생기자로 선발되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여러분들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안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관심이 있다면 1월 15일을 기억하고 관심이 있다면. 1월 15일에 찾아올 것이라고 알기때문입니다. 기자는 제일 중요한 게 끈기입니다. 끈기있게 여러차례 출입처나 취재현장을 가듯이 끈기있게 수완뉴스의 홈페이지를 보신다면 달콤한 합격의 기쁨을 안겨다 드릴 수 있습니다.

    공고글에도 보셨듯이 1년동안 수완뉴스에서 학생기자로 함께 하실 예정입니다.

    합격자 여러분들은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단계를 거쳐야지만 최종합격자가 됩니다.

    인트라넷 가입 신청서 제출 => 합격자 제출폼 등록 => 증명사진(모두 제출) 및 제작비 입금(신청자만) (완료)

    총 3단계에 달하는 긴 절차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완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증명사진은 [email protected]으로
    각 신청서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학생기자는 따로 단톡방을 저희들이 만들진 않으며, 각 기자들간에 활발한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제제 하지 않으나 해당 단톡방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수완뉴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기자증,명함 제작을 희망하는 신청자인경우, 제작비용까지 입금을 완료해주셔야지만(~1/20) 최종합격자 등록이 됩니다. 입금을 안할시 최종합격자 등록이 안됩니다.

    인트라넷 주소 admin.su-wan.com

    아이디 발급 신청 주소 http://admin.su-wan.com/index.php?mid=idpress

    합격자 등록 최종 폼 http://goo.gl/forms/83jwophZjZ

    합격자 명단

    2기 학생기자 합격자

    이름 재학중인 고교명 학년 최종 활동 부서
    김예림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 1 사진팀
    김다빈 광희중학교 3 교육팀
    박예림 청주외국어고등학교 2 스포츠팀
    박은진 인천포스코고등학교 1 교육팀
    권수아 광영여자고등학교 1 스포츠팀
    이빈 용인백현고등학교 3 경제팀
    윤예지 압구정중학교 3 문화팀
    박정후 재송여자중학교 3 문화팀
    김수민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1 교육팀
    변효선 관교여자중학교 3 미디어팀
    이정원 남성여자고등학교 1 스포츠팀
    정해윤 자양고등학교 1 종합보도팀
    이주리 청담고등학교 3 영상 편집팀
    김성준 정치사회팀
    허세영 선화여자고등학교 1 정치사회팀
    박나영 호평고등학교 1 정치사회팀
    임한나 전주대학교 15학번 사진팀
    이영진 경진중학교 2 교육팀
    강유나 안양부흥중학교 2 미디어팀
    최현정 분당대진고등학교 2 스포츠팀
    이한슬 덕계중학교 2 교육팀
    이지원 충북에너지고 2 영상편집팀
    김수연 경북여고 2 사진팀
    백선영 영덕여자중학교 3 사진팀
    김진백 경남대학교 12학번 문화팀
    박상규 청주대학교 12학번 정치사회팀
    이수연 산본고등학교 1 문화팀
    이다솜 용인서원중학교 3 문화팀
    김지은 초지고등학교 1 영상편집팀
    김지원 광명경영회계고등학교 1 경제팀
    공형주 창북중학교 3 영상촬영팀
    고송희 예비고1 정치사회팀
    조한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1 사진팀
    이지원 영신고등학교 1 문화팀
    김은지 명덕여자고등학교 1 종합보도팀
    이소민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1 교육팀
    정하림 영파여자고등학교 2 교육팀
    박윤찬 여주고등학교 2 교육팀
    전유정 진영고등학교 2 문화팀
    김태우 화정중학교 1 영상편집팀
    배민환 금오공과대학교 12학번 문화팀
    유지민 이화여자대학교 15학번 문화팀
    원준 중앙대학교 15학번 정치사회팀

    국민회의 13일 대통령 기자회견에게 독설을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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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서울] 국민회의가 13일에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강력한 비판의 논조를 가했다. 국민회의는 ‘박 대통령은 아베의 사과를 가로채더니,이제는 입막음까지 하려는가’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정대협의 집시법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수사 내용부터, 대국민 담화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조를 취하였다

    아래는 국민회의 대변인의 논평내용이다.
    경찰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에 대해 집시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보도에 깊이 분노한다. 우리는 먼저 박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 인식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어제 대국민담화에서 위안부 합의안에 피해자들의 원하는 세 가지가 모두 충실히 반영되었다며 최상의 합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이 관여,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죄, 일본정부의 피해 보상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일본은 1993년 고노담화에서 이미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 개입을 인정하였으므로 군의 개입 문제는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노담화는 강압성까지 인정하였으므로 강제성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는 12·28 합의보다 우선하게 될 것이므로 ‘최상’이라 볼 수 없다.

    둘째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피해 배상이었다. 12·28 합의에는 이 두 가지 사항이 모두 빠져있고 일본 정부는 지금도 자신들의 법적 책임은 없으며 10억 엔도 배상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심이 빠진 합의는 ‘최상’일 수 없다.

    우리는 박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 해결 방향도 한참 잘못 가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 사과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전달했다는 소식은 없다.

    왜 위안부 피해자가 받아야 할 사과를 박 대통령이 받았는가. 박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라도 되는가. 아베가 사과했다면 위안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했어야 하지 않나. 또 대통령이 사과를 대신 받았다면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 사과를 전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닌가, 왜 사과를 가로챘는가.

    박 대통령은 말로 못할 고초를 당하고 평생 고난의 삶을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기는커녕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의 핵심도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을 했다. 또 아베 총리의 사과까지 가로채 놓고는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받아들일 것을 압박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권력까지 동원하여 입을 막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공권력을 자신의 의사관철 수단으로 남용하고 경찰이 정권의 충실한 시녀 노릇을 하는 것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정대협에 대한 부당한 수사는 즉각 중단하지 않는다면 국민회의는 국민과 함께 저항해 나갈 것이다.

    경찰, 정대협 수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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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 DB
    △위안부 소녀상 모습, 수완뉴스 DB
    △위안부 소녀상 모습, 수완뉴스 DB

    [수완뉴스=서울] 14일, CBS노컷뉴스는 ‘단독’으로 ‘경찰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 보도내용에 따르면 14일 서울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정대협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6조 4항 ‘신고한 목적,일시,장소,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 항목’이다’고 보도하며, 1천명을 넘어서면서 당초에 신고한 100여명이 넘어서면서 해당 조항을 위반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서울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빌려 “외교 공간 100m 이내에는 원칙적으로 집회가 금지되지만 24년 동안 정대협 수요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돼 이를 허용해 왔다”면서도 “현재 정대협 집회 부분에 대해서는 신고범위 이탈을 별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인용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측은 이와같은 보도가 되자 마자  아니다 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다른 단체는 수사하고 있지만 정대협에 대한 수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해명했다

    이에 대해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주 집회 신고는 경찰과 의논해서 평화적으로 해 왔다”며 “24년 동안 수요 집회를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출석 요구서는 아직 받은 바 없지만 설령 받는다고 해도 24년 동안 집회를 이어온 만큼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제국의 위안부 명예훼손·인격권 침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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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서울] 지난 13일, 법원은 ‘제국의 위안부’ 소설에 ‘정식적 위안자’ ‘자발적 매춘부’등에 대해 표현 명예훼손, 인격권 침해를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동부지법 민사 14부(박창렬 부장판사)는 이옥선(90)씨 등 위안부 할머니 9명이 ‘제국의 위안부’로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1천만원씩 총 9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8월 위안부 문제를 제국주의 욕망에 동원된 ‘개인의 희생’으로 보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신적 위안자’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2014년 7월 9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책에 나온 이와 같은 문구 34내가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여, 1인당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낸바 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 모집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은 유엔의 각종 보고서와 고노 담화, 국내 학술 연구 결과로 인정되며 위안부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과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채 ‘성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살당했다”고 전제했지만 “이 책에서 ‘가라유키상의 후예’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등 10개 부분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본인의 선택에 의해 매춘업에 종사한 사람임을 암시해 허위사실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등 22개 부분은 과장을 넘어 원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에 해당돼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하며 ‘학문의 자유’에 해당되어 제제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박교수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주장한 ‘학문의 자유’에 대해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격권에 대한 보호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면서 “일반적인 학문 발표보다 신중함이 요구됨에도 박 교수는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표현으로 원고의 명예와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 등 3명은 이날 선고가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대한민국에 요구한다”고 말한바가 있다.

    #5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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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국립극단이 2015년 가을 끝 무렵, 청소년 극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청소년 극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넓은 폭으로 다양한 청소년 극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청소년들을 주제로 가져가고 있지만, 결코 청소년들 ‘만’을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총 9명의 배우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붓는다. 화려함이 묻어 나오는 대사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어투로,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 깊은 곳에 있는 각자의 감정까지도 담담하게 뱉어낸다. 이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는 공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은데, 바로 이것이 청소년 극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전적으로 ‘청소년’은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청소년은 누구에게나 그때 그 시절인 과거로 남아있을 수도, 지금 현재로, 혹은 미래의 모습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연극 <비행소년 KW4839> 안에서의 청소년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고, 공연장 입장과 함께 허구의 세계로도 입장하는 연극의 묘미로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이 아닌 이들마저도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저에게는 한계가 고민입니다. 저에게 한계라는 단어는 되게 공포스럽습니다. 제 자신에게 한계를 느낀다든지, 배경에 한계를 느낀다든지, 어느 부분에서든 한계를 느낀다면 저는 끝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는 인정해버리면 그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맛보지 않은 한계와 고민을 얼른 맛보고 져버리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라는 외침을 각 인물들은 한 명씩 일어나서 함께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 작은 외침은 큰 울림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외침에 어느샌가 공연을 보는 나 또한 그들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 작은 외침은 어딘가 모를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던 나라는 사람에게도 한계라는 것은 꼭 이러한 무엇이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게만 느껴져 이 불완전한 시기 속에 버려진 듯한 기분을 종종 느꼈는데,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날에 사는 위태로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작품이었다.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작품의 내용을 제외하고도 아직은 미숙하고 불완전한 청소년들의 심리를 다양한 영상, 조명, 음향으로 표현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연극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음악들과 화려한 영상, 조명으로 그들의 혼란스러움이 확연하게 드러났고 첫 시작부터 끝까지 강렬했다.

    처음으로 내•외부의 ‘한계’와 부딪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기다림’을 배우는 그들. 자신만의 화려한 비행을 꿈꾸는 우리 모두가 비행소년이다.

     

    -여민주 칼럼니스트-

    더민주 누리과정대책특위 보육대란 긴급토론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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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뉴스=국회,서울] 더불어민주당이 누리과정대책특위 보육대란 긴급토론회를 13일 의원회권에서 개최할 예정이다고 지난 12일과 13일 연달아서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누리과정대책특별위원회’가 주최하는 긴급현안 토론회 ‘임박한 보육대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13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긴급현안 토론회는 우려하던 보육대란이 빠르면 1월말 서울부터 현실로 발생할 것이 예상되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근본적 문제해결보다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교육청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협박성 통보만을 반복하고 있어, 사태 해결을 위해 긴급히 개최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2년 누리과정 도입 시부터 중앙정부가 100% 지원하는 유보통합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소요되는 예산 전액을 교육청에 위법하게 전가시켜, 시도교육청 부채가 2012년 9조원에서 2015년 17조원까지 급증했고, 심지어 2016년에도 4조원의 지방채 발행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밝히며 “말 그대로 지방교육재정은 파탄 일로이며, 초중등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수년째 학교시설투자 등이 정상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등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고 강력하게 이번 누리과정예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13일에 개최될 누리과정 긴급토론회에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회원들 약 700명 가량이 참석해 현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며 또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이목희 정책위의장, 김태년 누리과정대책특위 위원장, 유기홍 의원, 박홍근 의원, 도종환 의원 등이 참석해 현장의 고충을 경청하고 관련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의 전체 진행은 김성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가 맡고, 토론자로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김득수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장, 고성희 서울 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위원장, 김현국 교육재정확보국민운동본부 정책팀장 등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