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 31대 의자왕, 마지막 불꽃

[수완뉴스=김경순 기자]

충신을 탄압하고, 삼천 궁녀로 상징되는 향락과 퇴폐로 나라를 말아먹은 못난이로 알려져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잘났던 아버지보다 더 잘난, 그래서 백제의 마지막을 초라하지 않게,
오히려 화려하게 장식했던 뛰어난 군주였다.

무왕의 장자로 태어났는데, 모계가 불확실 한 것으로 보아 무왕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난 듯하다.
무왕의 정비는 사택지적비로 유명한, 당시 백제 최대의 귀족 사택씨인데,
정비의 자식이 아닌 의자왕은 사택씨의 견제로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태자 책봉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용맹스럽고 담이 크며 결단력이 있었고,
어버이를 효로써 섬기고 형제와 우애롭게 지내어 해동증자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하는데,
하필 증자인 것으로 보아 아버지처럼 유학을 좋아했나 보다.
기세등등한 계모와 외척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고, 그랬을 것이다.

641년, 살얼음판 같았을 9년 간의 태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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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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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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