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 23대 안원왕, 쇠퇴의 시작

[수완뉴스=김경순 기자]

휘는 보연, 체구가 장대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안장왕이 로맨티스트답지 않게 후사도 없이 서거하여, 531년 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남북조와는 전통의 조공 외교를 이어 갔고, 끊임없는 자연 재해에 시달렸으며,
재위 3년째에 아들 평성을 태자로 삼았고, 재위 10년째에 백제의 침공을 막았으며,
재위 15년 만에 사망하였다.

치세를 평가하기엔 기록이 심히 빈약한데,
이냥반 치세의 어두운 이야기가 일본서기에 전한다.
구라로 떡칠 한 일본서기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하니 인용을 해보면,
왕은 정부인에게서는 왕자를 얻지 못하고,
후궁인 중부인, 소부인에게서 각각 아들을 하나 씩 얻었는데,
그 중 중부인의 아들 평성을 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소부인 측에서 반발하여, 
왕이 병으로 눕자 중부인 측과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중부인 측의 두목은 추군, 소부인 쪽은 세군이었다고 하는데 둘 다 외척 세력이었던 듯하다.
이 두 세력은 궁문에서 치열하게 맞붙었고, 추군 측이 승리하였는데,
승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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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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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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