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 17대 소수림왕, 명군 중의 명군

[수완뉴스=김경순 기자]

함자는 구부.
371년,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 사망한 고국원왕의 뒤를 이었는데,
왕이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사 항전한 군민들 덕분에 평양성은 지켜내었으나,
이미 아버지가 생전에 남북으로 온갖 망신을 떨며 나라를 알뜰하게 거덜내었기에,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의 동네 국가 수준으로 전락하였으며, 왕실의 권위는 바닥이었다.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탈출로를 모색하던 소수림왕은,
이듬해에 태학을 세우는 한편 불교를 공인 하였다.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태학은 물론이고, 왕즉불 사상의 불교 또한 왕권 강화에 기여하여,
국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으므로,
절박한 처지의 고구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는 전진의 승려 순도에 의해 처음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해동고승전 등을 보면 민간에는 이미 한참 전에 퍼져 있었으므로,
국가의 위기를 맞아, 왕실 차원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인 것이 처음이라는 뜻일 것이다.
373년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하였고,
다음 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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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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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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