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일 오전 1:03
ENGLISH 中文 日本語
More

    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214 게시물

    -

    0 코멘트

    고려 : 13대 선종, 평온무사

    왕 운 30년 가까이 태자로만 재직하던 형이 즉위한지 3개월 여만에 사망하여 얼떨결에 왕위에 올랐다. 1083년 35세였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 큰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시절이었고, 공연히 사람을 몰아세우는 형이상학도 미미한 상황이라, 다들 생업에 몰두하였고 국제 교역...

    고려 : 12대 순종, 바로 따라가다

    왕 훈 8살에 태자가 되어 37세에 즉위하였다. 1083년이었다.어려서부터 병약했다는데 효심만은 강하였는지, 살만큼 살다간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병이 들었고, 3개월 만에 사망하였다.인생의 대부분을 태자로 살다 갔는데, 후사도 없어 동생이 뒤를 이었다.아버지 뒤를 바로 따라가서 순(順)종인가 보다. 본래 몸...

    고려 : 11대 문종, 고려의 세종대왕

    왕 휘 김은부의 둘째 딸 원혜왕후의 소생이다.원혜왕후는 언니와 함께 현종에게 시집갔으나, 결혼한 지 10여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만 비운의 여인이었다.현종은 왕자를 둘씩이나 생산한 첫째 아내가 사망하자, 아들을 더 낳고 싶은 욕심인지 아니면 남겨진 어린 자식들에 대한 배려인지는...

    고려 : 10대 정종, 거란에 판정승하다

    왕 형묘호의 발음이 3대왕과 같아 혼동이 되지만 한자도 다르고, 발음도 당시에는 구별이 되었을 것이다.명이 짧아 20을 못 넘기고 요절한 친형의 뒤를 이어 17세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1034년이었다.사춘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형 못지않게 똑똑했기에, 열여섯에 시작한...

    고려 : 9대 덕종, 똘똘한 아이

    ​왕 흠. 위대했던 아버지가 40세가 되던 1031년, 저승사자의 이른 방문을 받는 바람에, 요즈음이라면 학원 다니느라 바쁠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야 했다.이 나이면 거란의 동갑나기 흥종 처럼 모후가 섭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 소년은 워낙 어린 시절부터...

    고려 : 거란의 3차 침입, 귀주대첩

    제 3 차 여요 전쟁2차 여요전쟁이...

    고려 : 8대 현종, 위대한 임금님

    어머니 헌정왕후는 불행한 사랑을 한 여인이었다.남편 경종이 사망한 후 돌 볼 자식도 없이 궐을 나가야 했던 젊은 그녀는, 외로웠는지 아니면 심심했는지, 그만 이웃에 살던 숙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이 숙부가 유부남이었다.현대적 관점이라면 유부남이 아닌 숙부와의 사랑만으로도 갈 데 없는 패륜이지만, 당시의 관습으로는,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다지 큰 흉이 되지도 않는 일이었으므로, 여염이라면 그냥 저냥 만나서 살다가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유교적 국가질서 확립을 국정철학으로 삼았던 현왕의 여동생이자,...

    고려 : 7대 목종, 게이의 슬픔

    왕 송, 헌애왕후의 소생으로 경종의 유일한 아들이었으나, 경종이 사망했을 때 2살 남짓의 어린 아이에 불과하여 왕위를 잇지 못하였다.이러한 경우, 보통은 왕위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간주되어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살기 쉬우나, 도덕군자 성종은 왕 송을...

    고려 : 거란의 1차 침입, 서희의 전쟁

    제 1 차 여요전쟁거란족은...

    고려 : 6대 성종, 고려를 완성하다

    왕 치,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할머니 신정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영특하여 공부를 잘했고 도덕군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성장환경이 불우하여 일찍 철이 들었나 보다. ​981 년 경종의 양위를 받아, 충과 효를 국정의 모토로 삼았고, 아버지 왕욱을 대종으로 추존하여...

    고려 : 5대 경종, 전시과를 만들다

    왕 주, 광종의 맏아들이자 외아들이었다.광종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꼬투리만 잡히면 처형을 하였는데, 단순히 사람 죽이는 재미로 그런 것은 아니고, 연이은 참소에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게 되자,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호족이고,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기는 매한가지였으므로 옥석구분 없이 없애버렸을 것이다.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었던 호족들은 왕의 교체를 생각하였을 것이고, 교체한다면 명분이 클수록 좋았을 것이므로,최고의 명분을 가지고 있던 비운의 왕태자들인 혜종의 아들과 정종의 아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https://www.swn.kr/home/post-new/
    http://pf.kakao.com/_GwqET
    https://www.facebook.com/suwannews
    https://www.x.com/suwannews_korea
    https://www.instagram.com/suwanj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