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제륭, 원성왕의 증손으로 김헌정의 아들이다.흥덕왕 사후, 숙부 김균정과 왕위를 놓고 대립하였는데,균정은 아들 우징, 조카 예징 그리고 무열왕계인 김양의 지지를 받았고, 제륭은 시중 김명, 아찬 이홍, 그리고 배훤백의 후원을 받았다.양자가 왕위를 놓고 협상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결국 서로...
김 언승, 김인겸의 차남으로 소성왕의 동생이다.할아버지 원성왕 시절, 제공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고, 시중, 이찬, 병부령 등을 역임하며 실력을 키웠다. 조카인 애장왕이 즉위한 후에는 섭정이 되었으며 이어 상대등에 올라 권력의 정점에 섰다.시중자리에 있던 친동생과...
김 청명, 소성왕의 아들로 서기 800년 13세에 즉위하였다.너무 어린 나이였으므로 숙부 언승이 섭정하였고, 원성왕계의 왕통을 확립하기 위한 언승의 의도였겠지만, 즉위 이듬해에 무열왕과 문무왕은 따로 분리시키고, 태조부터 애장왕의 고조까지 모시는 오묘를 새로이 구성하였다.아무튼 이로서 편법적이지만...
김 준옹, 원성왕의 장자였던 인겸의 큰아들로서, 원성왕의 아들들이 다들 병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손자가 왕위를 이었다.
원성왕의 독특한 왕권강화책인 직계중용방침에 따라,어려서부터 나랏일을 하여, 대아찬, 시중, 병부령 등을 거쳤고,태자가 된지 3년 만인 798년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김 경신, 내물왕 10세손이며, 일길찬을 지낸 김효양의 아들로서, 무열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새로운 왕통의 시조이다.혜공왕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김 양상과 함께, 경덕왕의 관제개혁을 폐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김지정의 난을 진압하면서 혜공왕을 죽이고, 김...
제 37 대 선덕왕
김양상, 내물 마립간의 10세손이며, 미실의 연인, 사다함의 증손이다.어머니는 성덕왕의 딸인 사소부인으로. 혜공왕의 고모가 된다.선덕여왕과 시호가 같아 혼동할 수 있으나 한자가 다른데, 당시에도 발음이 비슷하여 문제가 되었는지, 삼국시대 여자 선덕왕을 선덕여왕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경덕왕...
김 건운, 40대 초반에 서거한 경덕왕의 아들로, 765년에 불과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모후가 섭정하였고 즉위 이듬해에 신궁에 제사 지내었다.4년 차에 첫 번째 반란인 대공, 대렴 형제의 난이 일어났고,그로부터 3년 뒤인 재위 6년에는 김유신의 자손인 김융이...
김 헌영,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형인 효성왕이 후사도 없이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아마도 김순원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경덕왕을 태제로 삼게 한 듯한데,정권 막후 실세였던 외척들이 권력을 놓지지 않기 위해 꾸민 심모원려이겠으나, 권력의...
김 흥광,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효소왕의 아우이다.
702년, 형이 16세에 사망하는 바람에 불과 10대 초반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애가 어리므로 별수 없이 모후 신목왕후가 또 섭정하였다.2대에 걸쳐 섭정을 하며 아들들을 지켜낸 신목왕후의 정치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아무래도...
김 이홍, 신문왕의 아들로 6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6세에 사망했다.어린아이가 정무를 살폈을 리는 없으므로 재위 기간 내내 모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다.
692년, 40대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까운 나이에 서거한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며,재위 3년에 신궁에 제사 지내었다.이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