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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0일 (토요일) 3: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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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순

    김경순 기자 입니다.
    203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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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 2차 여당전쟁, 연개소문

    제 2 차 여당전쟁 2차 여당 전쟁은 한 번의 전쟁이 아니라, 당태종 이 세민 사후부터 연개소문이 죽기 전까지 진행된 수차례의 충돌을 말한다.이세민이는 양광이에 비해 대 고구려 전과가 상당하였으므로 원정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으나, 지 아들은...

    고구려 : 1차 여당전쟁, 최고의 수성장군 안시성주

    제 1 차 여당전쟁 수왕조를 양광이 말아 먹는 바람에 중원이라는 사슴은, 같은 선비족 출신인 당 고조 이연의 차지가 되었다.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당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창업주의 저주와도 같은 아들들의 골육상쟁의 결과, 형과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

    고구려 : 28대 보장왕& 연개소문, 최후의 불꽃

    연개소문에게 참살된 영류왕의 조카로 무늬만 왕인 오욕의 세월을 살다가, 대고구려의 간판을 내린 안습의 군주이다. 당나라로부터 노자의 도덕경을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으므로 노자의 무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평양성 함락 후...

    고구려 : 27 대 영류왕, 실각한 전쟁 영웅

    당에 굴복하여 대고구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유약하고 어리석은 왕으로, 보다 못한 영웅 연개소문에게 살해된 한심한 이미지이나, 그는 평양성 전투에서 내호아의 4만 수군 정예병을 500 결사대로 박살내어 살수대첩을 가능케 한, 희대의 명장이자 2차 여수전쟁의 수훈갑이었다. 휘는 건무,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618년에 즉위하였다.비록 수나라를 패퇴시켰다고는 하나, 그...

    고구려 : 4차 여수전쟁, 양제

    4차 여수전쟁 양광은 귀국한 이후에 양현감의 반란을 진압하여 일단 발등의 불은 껐으나, 이밀을 비롯하여 각지의 세력가들과 농민들의 반란에 시달려야 했다.이밀, 동이족 출신이라는데, 출신이 뭐든 수나라 귀족이다. 을지문덕이 고구려 귀족이 듯이. 아무튼 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양광은 다시...

    고구려 : 3차 여수전쟁, 더 위험했던…

     3차 여수전쟁 2차 전쟁의 참패는 양광을 완전히 미친놈으로 만들었다. 애비 수문제가 참담하게 실패했던 고구려 정벌을 성공시킴으로서, 천하 통일의 방점이자 최대의 치적으로 삼아, 차별성을 부각하고 황위 찬탈의 치부를 가리려고 했었는데, 애비보다 더 커다란 실패를 맛보았으니 멀쩡했다면...

    고구려 : 2차 여수전쟁, 을지문덕

    2차 여수 전쟁 : 살수대첩 1차 전쟁에서 패전한 수 문제는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후 고구려에 대한 원정 계획 일체를 중단시켰고, 백제의 부추김도 무시하며 마치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고구려를 대했다고 한다.이는 분노에 이끌리지 않은 냉철한...

    고구려 : 1차 여수전쟁, 강이식

    1차 침입 수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로서,대대적으로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을지문덕에게 농락당해 쫓겨났고, 그 여파로 망해 버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나 한껏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한 그저 그런 중국 왕조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그렇게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고구려 : 26대 영양왕, 마지막 명군

    휘는 대원, 평원왕의 맏아들로 25년 동안 태자로 재직하였고, 590년 왕위에 올라 즉위 초반 3년간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책봉을 받고, 조공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그런데 그 다음부터 5년 간은 관계가 냉랭했는지 사신을 교환한 기록이 없고,즉위...

    고구려 : 25대 평원왕, 딸 바보 중흥군주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겪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고구려의 왕 노릇하느라 전전긍긍했던 양원왕의 맏아들로서,출생년도는 모르나, 양원왕이 요절한 듯하니 아마도 10대에 아버지의 뒤를 이었을 것이다.휘는 양성, 559년 왕위에 올라, 농상을 장려했으며,...

    고구려 : 24대 양원왕, 안쓰러운 아이

    휘는 평성, 545년 왕위에 올랐다. 일본서기에는 즉위 당시 나이가 8세로 되어있으나, 골육상쟁을 벌인 그 평성이라면, 533년에 태자가 되었으므로 최소한 12살은 넘어야 한다.뭐가 되었건 어린 나이에 옥좌에 앉은 듯하다. 치세를 보면, 남조와 교류를 중단하고 북조에만...

    고구려 : 23대 안원왕, 쇠퇴의 시작

    휘는 보연, 체구가 장대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안장왕이 로맨티스트답지 않게 후사도 없이 서거하여, 531년 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남북조와는 전통의 조공 외교를 이어 갔고, 끊임없는 자연 재해에 시달렸으며,재위 3년째에 아들 평성을 태자로 삼았고, 재위 10년째에 백제의 침공을 막았으며, 재위 15년 만에 사망하였다.치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