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한 노란 잎들 사이에점점이 박힌 빨간 열매들이안개비에 말갛게 씻기는가을로 난 길
바위 아래밑동이 굵은 나무는하늘을 향해 기이한 몸짓을 하고
하늘가에돌담으로 둘러친신이 머무는 자리는 고요하다
구름 속을 내려가니
다시 만난 어여쁜 길은제 가진 것을 아낌없이 떨구며붉은 손을 들어 배웅하고
어두운...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저 멀리 배 몇 척 어릿하고
갈매기 나는 빨간등대 아래젊은 애들 웃음소리 싱그러운데
그 예쁘고 수다스러웠던 네가사철 그 안에만 있다니
부박하고휘발성이 강한순간의 생각을 너무 믿은 탓이다
보기 싫어 돌아가려 해도입술을 비죽이며 울던코흘리개가 눈에 밟혀
넋을 놓고 바라만...
달빛은 구름 속에 갇히고바람이 귀신 소리를 내던 날
줄 지어선 가로등은인적없는 거리를 하얗게 비추고눈 시퍼런 길고양이는돌풍에 놀라 괴성을 지른다
대기를 가득 채운 악한 기운이허공을 어지럽게 휘저을 때마른 백일홍은 제 그림자와 섞여기괴한 춤을 추고
귀엽던 동생은 목을 매단다
그립거나두려울 게 별로 없고정욕에서도 놓여난 지금
타인의 미소를 사야 할 필요가더는 없으므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가고 싶은 곳도가야 할 곳도 없기에
헛수고와 비굴을 멈추고좌초한 배처럼 주저앉아풀벌레 소리 사라진차갑게 식은 세상을 바라본다
삶이란맨손에 쥔 한 줌 눈덩이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