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구름 속에 갇히고바람이 귀신 소리를 내던 날
줄 지어선 가로등은인적없는 거리를 하얗게 비추고눈 시퍼런 길고양이는돌풍에 놀라 괴성을 지른다
대기를 가득 채운 악한 기운이허공을 어지럽게 휘저을 때마른 백일홍은 제 그림자와 섞여기괴한 춤을 추고
귀엽던 동생은 목을 매단다
그립거나두려울 게 별로 없고정욕에서도 놓여난 지금
타인의 미소를 사야 할 필요가더는 없으므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가고 싶은 곳도가야 할 곳도 없기에
헛수고와 비굴을 멈추고좌초한 배처럼 주저앉아풀벌레 소리 사라진차갑게 식은 세상을 바라본다
삶이란맨손에 쥔 한 줌 눈덩이 같은 것
검은 구름에서 불어온악한 바람이막내 누이를 데려간 후
폭우처럼 쏟아지는 슬픔에머릿속에 번개가 칠 때마다벼락을 맞은 듯이천둥 같은 울음을 울었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아픔에숨을 쉴 수 없을 때에는이글대는 태양이 달구는 거리를무턱대고 걸었고
어렸던 그때처럼손등으로 눈물을 비비며돌아가신 아버지께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매달린 그악한 절규그 애달픔에 발을 구르고맥락 없이 이어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머리를 감싸 쥔다
양친의 모습이 어린 고운 얼굴은가슴 속 화인으로 타들어 갈 뿐말이 되어 나오질 않으니떨리는 손으로 향을 사르고피어오르는 연기만 우두커니 바라본다
문득 머릿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