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구름 속에 갇히고바람이 귀신 소리를 내던 날
줄 지어선 가로등은인적없는 거리를 하얗게 비추고눈 시퍼런 길고양이는돌풍에 놀라 괴성을 지른다
대기를 가득 채운 악한 기운이허공을 어지럽게 휘저을 때마른 백일홍은 제 그림자와 섞여기괴한 춤을 추고
귀엽던 동생은 목을 매단다
그립거나두려울 게 별로 없고정욕에서도 놓여난 지금
타인의 미소를 사야 할 필요가더는 없으므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가고 싶은 곳도가야 할 곳도 없기에
헛수고와 비굴을 멈추고좌초한 배처럼 주저앉아풀벌레 소리 사라진차갑게 식은 세상을 바라본다
삶이란맨손에 쥔 한 줌 눈덩이 같은 것
검은 구름에서 불어온악한 바람이막내 누이를 데려간 후
폭우처럼 쏟아지는 슬픔에머릿속에 번개가 칠 때마다벼락을 맞은 듯이천둥 같은 울음을 울었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아픔에숨을 쉴 수 없을 때에는이글대는 태양이 달구는 거리를무턱대고 걸었고
어렸던 그때처럼손등으로 눈물을 비비며돌아가신 아버지께 빌었다
잘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