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뉴스=모난 생각] 오늘날의 사람들은 여가 시간과 자투리 시간의 대부분을 영상 매체와 함께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의 말초적 재미에 대한 피상적 인상을 가질 뿐,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접촉하는 영상 매체가 자신의 삶에 어떠한 세계관을 주입하고 형성하는지에 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본질이 아니라 매체, 즉 소통 수단의 한계로 인해 왜곡되고 오염된 것뿐이다.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의 매체 모두 제각기 다른 특성과 본질적 한계로 인하여 메시지의 내용을 제한시키며 매체를 이용하는 담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데, 본 칼럼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의사소통 방법을 글로 이루어진 고전적인 ‘활자 매체’와 통신의 발전으로 나타난 디지털 ‘영상(이미지) 매체’로 나누어 그 특성과 방향성을 대조하며 영상 매체를 비판할 것이다.
1부 활자 매체의 특성
이 칼럼을 보고 있는 독자라면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글을 읽는 중인 자신에게 요구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활자 매체의 특성이 무엇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이 문장을 이루고 있는 글자를 읽고 있다면, 우선 개개의 글자들이 가진 모양에서 그 모양이 가리키는 언어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글자의 모양에서 언어를 끌어냈다면 다음으로는 언어가 상징하는 구체적 의미를 추상 세계에서 가져와야 할 텐데, 이는 곧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상징하는 개념 혹은 비언어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추상물에 대해서 언어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의미를 추론하며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언어와 추상 세계의 관계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이라는 단어를 읽은 경우, 우리는 개별적이고 구별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는 사람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개별적 대상을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라는 추상화된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빨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저 자동차는 ‘빨간’색이다.”라는 문장을 읽었다면, 자신이 경험을 통해서 목격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빨간색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자동차에 대입하여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추상화된 ‘빨강’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자신의 사고력을 통해 문장에서 나타난 ‘빨간 자동차’가 글의 전후 맥락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었을지 상상할 것이다. 이렇듯 글이란, 쓰는 것과 읽는 것 모두 문장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추상화 작업이 되어있음을 전제하고 만들어지며 그것을 활용하는 고도의 사고력이 있을 때에만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독자가 다른 모든 매체와 마찬가지로 매체로서의 ‘글자’ 또한 순수한 관념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필자가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던 의미들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읽는 추론이 전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글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생김새가 단순한 편이며 이러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글’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부분에 우리를 한눈팔게 하지 않는다. ‘글자’는 특별히 시선을 끌지 않고 언어를 표현하는 상징으로서 기능하며, 필자에게는 의미를 전달할 것을 종용하고 독자에게는 그 의미를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독자는 필자가 실수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거나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고 논리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글을 읽으며 필자가 글에서 주장하였던 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렇게 ‘글’에 몰두하는 것은 필자의 사고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 모든 행위는 독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추상, 추론, 판단 능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허위, 혼동, 논리와 상식의 오류를 간파해내는 것을 의미하고 문장에서 드러난 주장을 또 다른 주장과 대비시키고 비교하며, 주장에서 분리해 추상화시킨 내용을 사고력을 통해 또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활자 매체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사실과 주장을 질서 있고 논리 정연하게 전개 시키는 특성을 가진다.
앞서 언급한 모든 행위는 이괘을 고무시키는 과정이다. 서론에서 논하였듯이 매체의 형식은 그 한계로 인하여 매체에 부합하는 특정한 종류의 내용만을 수용시켜 의사전달을 오염시키고 의견을 변질시킨다. 활자 매체의 특성들은 공동체의 사고방식을 이성과 질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모순을 회피하며 공동체의 역량을 비교적 무거운 주제, 진지하고 이성적인 것에 집중하게끔 하는 방향성을 지닌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진보하는 기술력이 본인을 발전된 낙원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굳건히 믿기 때문에 발전된 기술이 본인을 이끌어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본 칼럼의 2부에서는 영상 매체의 특성을 비판적 입장에서 고찰하며 오늘날 우리가 별다른 의식 없이 사용하는 영상 매체가 내포한 방향성과 이에 대한 극복 방법을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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