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일 오후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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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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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 4대 광종, 제 2의 건국

    이름은 왕 소, 천둥에 놀라 죽었다고 기록된 친형의 뒤를 이어 949년 왕위에 올랐다.혼란스러웠던 이복형과 친형의 치세를 온몸으로 겪었던 광종은 형들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우선 나라의 안정에 주력하여 공신들의 표준 녹봉을 정하는 등 호족들을 다독였고, 성을 쌓아 북방의 위협에 대비하였다.필요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자신의 정치력 배양에도 힘쓰며, 이후의 정국을 구상하던 중, 951년 후주가 중원의 맹주로 부상하자, 그동안 사용해 오던 독자적인 연호를 버리고, 후주의 연호를 따르는 등 대중원외교를 강화하였다. 후주 또한 거란의 배후에 있는 고려의 지정학적 위치를 중시하였는지, 고려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대하였다.후주와의 잦은 교류는 왕권 강화를 모색하고 있던 광종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적 자원을 제공하였다. 953년에는 승려 겸신을 국사로 봉하여 화엄종을 왕실 종파로 만들었고, 부모를 위해 절을 지었으며, 균여대사의 성상융회 사상을 받아들였다.성상 융회는 화엄종과 법상종을 서로 합치자는 것인데, 두 종파의 교리상 미묘한 차이야 알 바 없으나, 개략적으로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라는 화엄원리는 언제든 전체주의적인 정치사상으로 변질이 가능하였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출발하고 세상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법상종의 교리 또한 왕을 정점으로 하는 전제국가 건설에 걸림돌이 될 리 없었으므로,성상융회는 전제적 왕권을 꿈꾸는 광종의 입맛에 맞았을 뿐만 아니라,두 종파의 신봉자들인 중소호족들과 일반 백성들을 친왕파로 만드는 보너스도 기대할 수 있었으므로, 오매불망 왕권 강화를 원했던 광종에게 두 종파의 융합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이렇게 백성들의 정신세계까지 보살핀 왕은 제위보를 설치하여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구호하였다.그동안 전쟁과 잇따른 정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심신 모두를 다독인 셈이므로, 여기까지의 행적만 보면, 성군으로 칭송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 5년 정국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다독이며 힘을 기르던 광종은, 956년 후주 출신 개혁가 쌍기와 그 동반 귀화인들을 전격적으로 등용하면서 본색을 드러내었다.쌍기의 진단은 '왕보다 힘이 쎈 이미 문벌화 된 귀족세력들이 만화의 근본'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으나, 그 처방만은 확실했다.쌍기는 문벌들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인 노예에 주목했고, 노비안검법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노비안검법은 전쟁으로 포로가 되었거나, 빚에 의해 노비가 된 자들을 원래의 신분으로 되돌려준다는 상당히 정의롭고 인도적인 모양새를 갖춘...

    고려 : 3대 정종, 천둥에 놀라서?

    이름은 왕 요, 야심만만하고 강인한 성격이었다 한다.  총 25남 9녀에 달하는 태조의 자녀 중 세 째 아들이고, 충주의 대 호족 유 긍달의 외손이자 후백제의 투항 세력을 대표하는 박영규의 사위였다.신명순선왕후의 5남 2녀 중, 요절한 형을 대신한 실질적인 맏아들이었으며, 친누이 낙랑공주가 경순왕과 결혼하여 신라 왕실과는 사돈 간이었다. 혜종과는 달리 든든한 배경을 지닌 로열 패일리였던 셈이다.  945년 혜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왕 규를 비롯한 선왕의 측근 세력을 쓸어버렸고, 왕식렴의 서경 세력과 동맹을 확실히 하였으며, 개국사의 불사리 봉헌에 참여하였고, 경전 간행을 위한 보를 설치하는 등 불교 세력과도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정권 찬탈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여러 세력들과 직, 간접의 원한을 맺게 되었고, 정통성이 심하게 훼손되는 바람에 민심은 물론 제 호족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고려 : 2대 혜종, 한심하다고?

    은혜 혜(惠),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놈들은 암군이거나 왕위를 빼앗긴 임금을 모욕하기 위해 이 글자를  사용하는데, 한심한 인간쯤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충혜왕이 대표적인 경우이다.이 수준을 넘어가는 인간말종에게는 양(煬)자를 쓰는데, 불효막심, 허랑방탕, 음란무도, 후안무치, 가렴주구, 인명경시.. 등등 온갖 나쁜 짓을...

    고려 : 유 금필, 상승 장군

    평주 출신이라고 한다. 우리역사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상승장군으로,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대군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하여 적장의 목을 따버리는 여포 같은 장수였다.일기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다.  태조의 치세 초반에 서경을 확보하는 등 북방을 개척하여,발해유민의 유입의 발판이자 통로가...

    고려 : 태조 왕건(3), 투자 유치의 달인?

    태조는 그다지 강한 임금이 아니었다.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세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궁예가 고생 고생하며 만들어 논 것을, 한밤중에 담을 넘어 삼켜버린 것이었기 때문에, 친위 세력이 강할 수 없었고, 쿠데타에 동조했거나 인정한 세력들도 진심으로 복종했다기...

    고려 : 태조 왕건(2), 정력왕?

    태조의 일생을 살펴보면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우선 당대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돈 많은 호족 가문의 영특한 맏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운일 것이고,늠름한 외모, 훌륭한 품성 그리고 최고의 교육이라는 엄친아의 3요소를...

    고려 : 태조 왕건(1), 난세 종결자

    송악의 해상 호족 왕륭의 맏아들이었다. 한 나라의 창업자답게 탄생설화가 존재하는데, 태양이 겁탈하고, 지렁이가 덮치고 하는 이상 망측한 것이 아니라 좀 학술적이다. 과학적이지는 않다.풍수의 대가 도선 대사가 집터를 잡아주었는데, 이사한 후 어머니 한 씨에게 태기가 있었고,...

    발해 : 15대 대인선 왕, 너무도 허망한

    10세기 초의 동아시아는 격동 그 자체였다.신라는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서로 치고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당나라는 황소의 난 이후 주전충에게 나라를 빼앗겨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당나라에 눌려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던 거란은, 야율아보기라는 걸출한 영웅을 만나 무섭게...

    발해 : 14대 대위해 왕

    재위 기간이 12년인데,알려진 바가 발해왕 중 가장 적다. 누락되었다가 20세기에 등재 되었는데, 누구의 자식인지, 언제 즉위하였는지도 모르고, 다음 대 대인선 왕과의 관계도 확실하지 않다.

    발해 : 13대 대현석 왕

    대건황 왕의 아들이고, 재위기간이 24년이다.24년 동안 뭔 짓을 했는지, 이때를 기점으로 중앙귀족들의 권력투쟁이 심해지고 발해에 망조가 들기 시작하였다.발해사에는 누락된 왕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기간 동안  여러 왕이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인수, 대이진, 대건황으로...

    발해 : 12대 대건황 왕

    14년 동안 재위했는데,당과 일본에 사신을 보낸 기록 말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발해 : 11대 대이진 왕, 최전성기?

    발해 왕의 시호를 기록한 신당서의 발해국기가 대이진 왕 시기에 작성되었고,  그 이후의 문서에는 시호가 기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이진 왕 이후부터는 시호를 모른다. 아버지 대신덕이 일찍 죽어, 선왕의 손자로 옥좌에 앉았다.아들들을 당나라에 수차례 파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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