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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0일 오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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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연극] 그린 폴터가이스트, 디지털 편집 과정에서 ‘존재 증명’ 의무를 지닌 배우의 이야기를 담다

    [수완뉴스=김동주 기자] 디지털 기술이 영화 제작의 풍경을 뒤바꾼 시대, 우리는 영화관에 갔을 때, 배우들이 물리적인 세트 대신 녹색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한 작품을 더 많이 소비한다. 이 무한한 가상의 캔버스는 놀라운 시각적 효과를 약속하지만, 동시에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에게는 미묘하고도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의 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디지털 편집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디지털 쓰레기’처럼 삭제될 위기에 놓인 녹색 크로마키 배경 속 배우들을 소재로, 스스로의 실재를 증명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앉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연극 『그린 폴터가이스트』가 혜화 연희예술극장에서 12월 15일부터 12월 21일까지 열린다.

    ▲ 연극『그린 폴터가이스트』의 포스터(사진=파손주의)

    공연의 주된 설정

    연극은 녹색 크로마키 배경을 뒤로, 무대 위에서 전신에 크로마키 수트를 입은 배우가 등장한다. 배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언가 못마땅한 듯 자신이 초라한 연극 무대가 아닌 화려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등장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이어 자신이 삭제되었다고 주장하는 배우, 그리고 크로마키 수트를 입은 배우 다섯 명이 함께 등장할 예정이다. 편집에서 탈락한 이들의 몸짓은 쇼 형식의 블랙코미디로 변주되며, 웃음과 씁쓸함이 뒤섞인 감정을 그려낼 계획이다.

    제목 『그린 폴터가이스트』는 디지털 합성 기술에 쓰이는 크로마키의 녹색(Green)과, ‘시끄럽게 떠도는 영혼’을 뜻하는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를 결합한 제목이다. 크로마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디지털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투명화된 ‘잔여의 존재’로 남는다. 그들은 편집에서 탈락한 군더더기와 같은 몸으로서, 존재를 붙잡기 위한 되풀이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이 공연은 ‘편집에서 살아남는 것’이 존재의 조건이 된 시대에, 삭제와 갱신의 리듬 속에서 연극적 현존이 어떻게 발화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연극적 환영과 디지털적 환영이 서로를 교란하는 경계 속에서, 실패한 존재의 흔적과 껄끄러운 현실이 드러난다. 그 틈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조건이 비친다. 남겨진 ‘군더더기’는 유령처럼 잔존하며 그 자체의 가치를 드러낸다.

    연극의 콘셉트 노트

    군더더기의 존재론 ― 편집에서 살아남기

    어느 날, 유명 슈퍼히어로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보았다. 초록색 크로마키 슈트를 입은 배우가 허공을 향해 연기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사방이 크로마키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과 사람들을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연기했다. 편집이 끝난 영화에서 그는 근사한 영웅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편집 전의 장면 속, 그 배우의 몸은 마치 벌거벗은 듯 애처로웠다.

    크로마키 기술의 흥미로운 점은, 매끄럽고 화려한 이미지를 위해 현실의 신체와 시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안에서 땀흘리던 배우의 몸은 결과물 속에서 말끔히 지워진다. 그래도 주인공은 배경과 구분되는 옷을 입지만, 대역이나 엑스트라, 스턴트맨은 전신이 초록색으로 덮인다. 그들은 스크린 앞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며, 언젠가 자신 위로 덧씌워질 환상을 기다린다.

    이 시대에 ‘영웅이 된다’는 것은, 결국 편집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편집당한다는 것은 곧 투명해지는 일, 존재의 삭제를 선고받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디지털 이미지가되기를 욕망한다.

    배우들은 극장의 유한한 무대보다, 스크린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길 바란다. 과거 영웅들이 먼 여정을 떠나 젊음의 샘을 찾아갔다면, 오늘날의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편집 프로그램 안에서 그 불멸을 얻는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제는 크로마키와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과거엔 크로마키가 전문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손에 쥔 도구다. 1인 미디어 시대, 우리는 모두 콘텐츠의 편집자가 되었다. 자신의 일상, 심지어 사적인 감정까지 콘텐츠로 만들어내며, 삶을 카메라와 편집툴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삶 자체가 기획과 편집의 대상이 되었다.

    편집에 맞지 않는 군더더기들은 삭제된다. 우리는 실제 삶마저도 편집이 쉽도록 ‘최적화’한다.

    그렇다면, 삭제된 군더더기들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우리 시대의 ‘군더더기’로 간주되는가? <그린 폴터가이스트>는 바로 그 군더더기들, 삭제되고 덮어씌워지는 존재들에 주목한다.

    디지털 이미지가 되지 못한 몸들, 임시 저장본처럼 떠돌다 버려지는 실수, 실패, 상처, 추함, 낯섦… 이 모든 부정성은 이제는 편집의 대상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지워질 때, 삶의 아우라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편집에서 살아남지 못한 모든 군더더기들이 시쓰럽게 소리치며, 매끄럽게 빛나는 이미지의 세계를 떠돈다. 우리는 이 유령을 무대 위에 어떻게 불러낼 수 있을까?

    창작자 및 참여진 소개

    본 연극은 최치원과 김서영으로 구성된 공연예술 그룹 『파손주의』가 기획했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감각을 탐색하며, 인터페이스의 표면을 거니는 디지털 플라뇌르(Digital flâneur)의 시선으로 연극을 창작한다. 19세기의 플라뇌르, 즉 도시 산책자들에게 ‘걷기’가 관찰과 사유의 행위였다면, 이 시대에는 ‘스크롤’과 ‘검색’이 사유의 도구가 되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쇼윈도 주변을 배회하고 관찰하며 이미지가 끝없이 생산 및 소비되는 광경에 주목한다. 특히 이미지 유통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재구성되는 바람들의 인식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심사를 바탕로 『파손주의』의 공연은 디지털과 연극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경계를 탐색하며, 수행적 접근 방식을 통해 연극을 첨단의 사유를 작동시켜볼 수 있는 실험적 장치로 다루고 있다. 연극을 통해 관객이 느끼는 일상적인 디지털 감각을 낯설게 만드는 경험을 제시하는 한편, 디지털 시대에 냉소에 빠지지 않고 타인을 환대하는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이 연극은 최치원, 김서영이 창안·연출을 맡고, 시노그라피 및 비디오아트는 이재빈, 퍼포먼스는 심민섭, 김희주, 이은창, 안지현, 김연수, 성욱제, 박서영이 맡았다.

    조연출은 여다혜가, 프로듀서는 안지현, 영상기술은 박한규, 음향감독은 이민성, 조명감독은 엄예솔, 무대감독은 최현욱, 그래픽 디자인은 김연수, 이재빈이 맡았다.

    참고로 본 연극을 위해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했으며,

    작품은 2025년 서울문화재단이 주도하는 예술창작지원 선정 프로젝트에 선정된 바가 있다.

    인터파크에서 실시간 예매 및 확인이 가능하며, 1인당 4만 원이다.

    김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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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To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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