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칼럼 신라 : 실성 마립간

신라 : 실성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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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김경순 기자]

김 실성, 발음이 묘한데, 열매 實에 성스러울 聖으로 한자 뜻은 좋다.

미추왕의 둘째 사위로 내물왕과는 동서지간이라 하는데,
10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장인과 사위…. 조작일 것이다.
이찬 대서지의 아들로 392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졌는데,
401년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 되는 바람에 내물왕이 신세를 비관하고 몸져눕자,
귀국하여 총독 비슷한 짓을 하였다.
더욱 기가 막혀진 내물왕이 402년 사망하자,
전왕의 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내물왕과 별 혈연적 연고가 없었음에도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옹립되었다.
고구려의 압력 때문일 것이고, 신라의 속국화가 심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왜와 우호 관계를 맺고 내물왕의 막내 아들 미사흔을 볼모로 보냈다.
자신의 의지였는지, 고구려의 제안이었는지….야 모르겠지만,
딴에는 잠재적인 정적을 제거하고, 적국도 달래는 묘수를 쓴 셈이나,
바로 이듬해에 백제의 침입을 받았고,
볼모의 효과가 없었는지 아니면 왜국정권의 통제력이 약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위 4년, 6년에 걸쳐 왜놈들의 연속 침입을 받았다.
뭐 주고 뺨 맞은 꼴이 난 것이다.
열 받은 실성왕은 7년에 왜인들이 대마도에 군영을 설치한다는 말을 듣고 선공할까도 했으나,
자신이 없었는지, 그냥 지켰다.

11년에는 내물왕의 둘째 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었는데,
이 역시 정적을 제거하고 상국의 환심을 사는 양수 겹장의 묘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4년에는 왜인들과 풍도에서 싸워 이겼다는데, 섬이면 해전을 했을 것이므로,
신라가 제법 기력을 회복했었나 보다.
자신감도 좀 생겼는지,
자신의 사위이기도 한  내물왕의 장남 눌지마저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어 제거하려고 하였는데,
오히려 눌지가 고구려 세력을 이용하여 역관광을 보내버렸다.

재위는 16년,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실성왕은 키가 크고 똑똑했으며 미래를 볼 줄 알았다 하는데,
그의 인생을 보면 별로 맞지 않는 인물평 같다.
그래도 젊어서는 볼모로서 조국에 기여하였고,
총독 비슷한 왕이 되어서도 혼이 없는 매국노가 아닌 신라왕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였다.

군사적 능력도 상당하였고 식견 또한 뛰어나,
신라가 고구려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을 막고, 연속되는 왜구의 습격에 나름 잘 대처하며,
위기의 신라를 지켜낸 임금이었다.

왕비는 신라 왕계에 등장하는 마지막 석씨로서 이후 석씨는 왕족에서 완전히 빠지는데,
기록이 없으므로 약간의 상상을 해보면,
실성왕은 자신의 성씨인 김씨보다는, 석씨의 사위 역할에 충실하였고,
석씨는 김씨로 넘어간 왕권을 되찾기 위해, 김씨 비주류였던 실성왕에게 올인하였는데,
결국 눌지로 대표되는 김씨 세력에게 패배하였고,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완전히 몰락하였다….
가 아닐까?

김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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