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칼럼 백제 : 16대 진사왕, 관미성을 잃다.

백제 : 16대 진사왕, 관미성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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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김경순 기자]

제 16 대 진사왕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침류왕의 동생이다.
침류왕이 죽자 조카 아신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를 이었는데,
침류왕의 짧은 재위와 연결해 보면 뭔가 의심스럽지만,
뭐가 되었건 즉위 초반부터 고구려와 툭탁대었으며,
즉위 6년째엔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2백 명을 사로잡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다음해에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이 즉위하였다.

광개토왕은 즉위 다음 해에 바로 백제를 공격하였는데,
그 능란한 용병술에 백제는 연전 연패, 석현성을 비롯하여 한수 이북의 10성을 빼앗겼고,
전략적 요충지 관미성마저 빼앗겨 경기 북부일대의 영토를 잃었다.
관미성은 사방이 험한 절벽이고 그 주위에는 바닷물이 있어서,
고구려군이 7방면으로 20일 동안 총공격해서야 겨우 점령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위치는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성 혹은 강화 교동도 또는 황해 옹진반도 어딘가라고 한다.
관미성을 상실한 직후 진사왕은 행궁에서 사망하였는데,
성장한 조카 아신왕에게 암살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 총명하며, 어질고,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에서도 큰 무리가 없는 괜찮은 왕이었는데,
재위 중 하필 광개토대왕을 만난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재위 기간은 8년, 향년 36세, 아까운 나이였다.

백제가 정쟁과 고구려의 침략에 시달리며 위축되는 동안,
야마토 정권은 착실하게 힘을 길러 일본의 확실한 패자가 되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였다 한다.
백제의 하락과 왜의 상승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백제가 아직 여유가 있어서 왕궁도 꾸미고 그랬던 모양이다.
왕궁에 큰 못을 파 바다처럼 꾸미고
그 바다 가운데 산을 쌓아서 신선과 부처가 노니는 신선봉우리를 만들었으며, 
온갖 동식물과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을 옮겨놔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김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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