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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김동주 기자]
사진은 한반도 지형을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모양 입니다. (사진출처=위키백과)
(수완뉴스=사회, 문화) 2016년 병신년이 가고 2017년 정유년의 해가 새로이 떴다. 새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동안의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1월 2일, 첫날에는 한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을 보았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새해의 첫날을 시작한 나는 역대 정유년은 어떤 모습이였을까 궁금하여 알아보았다.
먼저 이 기사의 서두를 알릴 역사 속 정유년은
1417년 조선 국왕 중에 한 사람으로 재위한지 17년째였었던 태종 조의 기록이다.
1월 19일
조선 초 학문의 연구 및 국왕의 자문 기관으로 당대 최고의 인재들만 모아놓은 곳이자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인 한글의 시초인 훈민정음을 편찬한 왕실 연구기관인 집현전이 사간원에 설치된 날이였다. 성곽 수축, 양잠권장 등의 시무를 올리는 등의 일을 보기 시작했다.
두번째는 조선 왕조의 폭군으로 많이 알려진 연산군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앉은 국왕인 중종으로 재위한지 32년, 1537년의 기록 중 하나이다.
9월 4일
김희열(金希說)을 한성부우윤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우윤이라는 관직은 한성부의 종이품(從二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였다. 한성부의 최고 책임자인 판윤을 도와 한성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송사를 비롯해 한성부 관할의 제반 업무를 담당했었던 관직이다.
세번째 는 장 희빈을 말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조선 후기의 국왕 중 한 사람으로 재위 43년째인 숙종이다. 1717년의 기록 중 하나이다.
10월 27일
청의 사신이 오니 왕세자가 서교(西郊)에서 맞이했었다.
당시 서교는 지금의 서울 서대문 밖의 근교를 이르던 말이였다.
네번째는 조선 후기의 찬란한 문화를 다시 일으켰던 국왕이였던 정조이다. 1777년의 기록 중의 하나이다.
2월 27일
궁궐을 수리하는데 있어서 공역을 간략하게 하고 사치스럽게 꾸미지 않도록 명을 내렸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을 이어 오랑캐라 불리는 여진이 세운 청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살기 어려워지고 붕당 정치가 심화되어 망가져갔을 시점에서
다행히 숙종, 영조 등의 현대에서도 훌륭한 군주로 칭송받고 있는 국왕들이 즉위하여 조선 사회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정조 역시 탕평책을 실시하여 붕당 정치를 조율했었던 영조의 손자로 즉위하고 정치, 문화 등 전반적인 사회 분야에서 조선 후기의 찬란한 문화를 융성했다.
이처럼 아마도 이 날에 사치스럽게 꾸미지 말고 공역을 간략히 하라는 건 당시 조선 사회의 배경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는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끝내고 10월 3일 연호를 ‘광무’라 하며 황제칭호 건의를 수락하면서 10월 12일 대한제국이라는 역사상 최초의 근대국가를 선포한 날과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로 오늘날 종로구 인근에 석유로 불을 붙이는 가로등이 설치됐다.
이 외에도 소설가 염상섭,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외쳤던 주기철 등 많은 사람들이 정유년에 태어났었다.
비록 2017년 연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대한 특검수사, 정유라 특혜의혹, 문체부 장관 구속 등,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실망을 안겨줬지만
이번을 기회로 더욱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주 기자 (tongjo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