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칼럼 발해 : 11대 대이진 왕, 최전성기?

발해 : 11대 대이진 왕, 최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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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김경순 기자]

발해 왕의 시호를 기록한 신당서의 발해국기가 대이진 왕 시기에 작성되었고, 
그 이후의 문서에는 시호가 기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이진 왕 이후부터는 시호를 모른다.

아버지 대신덕이 일찍 죽어, 선왕의 손자로 옥좌에 앉았다.
아들들을 당나라에 수차례 파견하는 등 당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5경15부 62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의 확정과 중앙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확립하였다.
발해를 율령제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모병제에 의한 상비군을 편성하는 등,
할아버지의 업적을 발판 삼아 발해를 크게 융성시켰다.
인구도 발해 역사상 가장 많은 약 300만이었다고 한다.
이때가 발해의 최전성기였을 것이나 아쉽게도 기록이 별로 없다.

장성한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동생 대건황이 뒤를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건 걸까?

김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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